[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부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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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흔하다. 우리 땅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가난한 선비의 밥상, 술상에 흔하게 올랐다. 귀하다. 궁중의 제사상에도 오른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종묘에 천신한다. 부추 이야기다. 부추는 ‘구(구)’ ‘구(구)’ 혹은 ‘구채(구菜)’라고 불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다산시문집’ 5권에는 ‘누가 알겠는가, 유랑의 부엌에서/날마다 삼구반찬 마련하는 것을’이라는 시구절이 있다. 유랑은 중국 남제(南齊)의 선비 유고지(441∼491)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 삼구(3×9)는 27이다. ‘삼구반찬’은 27가지의 반찬이다. ‘누가 유랑더러 가난하다고 하는가. 밥상에 반찬(어채·魚菜)이 27가지나 되는걸’이라는 시구도 있다. 27가지 반찬은 당연히 화려하다. 가난한 선비 밥상의 반찬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유고지는 가난했다. 밥상에는 부추로 만든 반찬 세 가지가 올랐다. 날부추, 삶은 부추, 부추김치다. 세 가지 부추반찬은 삼구(三구)다. 구(구)는 구(九)와 음이 같다. ‘3×9=27’로 말장난을 한 것이다. 고려나 조선의 선비, 사대부들은 ‘유고지의 부추 반찬 3가지’를 늘 기억했고 자주 글에 인용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그대 보지 못했는가? 주옹(周옹·?∼?)의 이른 봄 부추와 늦가을 배추를’이란 시구를 남겼다(‘속동문선’). 주옹도 중국 남제 사람이다. 그가 산중에 있을 때 문혜태자가 “산중의 채소 중에는 무엇이 가장 맛있는가?”라고 물었다. 주옹은 “이른 봄 부추와 늦가을 배추가 가장 맛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선시대 기록 여기저기에 ‘이른 봄의 부추와 늦가을의 배추’가 자주 등장한다.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1328∼1396)은 ‘시경’을 인용해 ‘이월 초하루 이른 아침엔, 양 잡고 부추나물로 제사한다’고 했고, 시집 ‘목은시고’에서 ‘부추 나물은 푸르고 또 푸르며, 떡은 색깔이 노란데/조석으로 잘게 씹어 먹으니 맛이 좋다’고 했다. 부추는 제사에 쓸 만큼 귀한 식재료이면서 한편으로는 떡을 먹을 때도 곁들여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궁중에서도 초봄의 제사에 부추를 소중하게 사용했다. 제사 절차 등을 기록한 ‘사직서의궤’에서는 제사 음식으로 청저(무김치), 근저(미나리김치)와 더불어 구저(구菹·부추김치)를 사용한다고 적었고, ‘세종오례의’에서도 ‘(제사상의) 첫째 줄에 부추김치를 놓고 무김치가 그 다음이며, 둘째 줄에 미나리김치를 놓는다’고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장생(1548∼1631)도 ‘사계전서’에서 ‘봄에는 부추를 천신하고 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기장, 겨울에는 벼를 천신한다. 부추는 알(卵·란)과 더불어 천신한다’고 했다.

흔히 궁중에서는 귀한 궁중음식을 마음껏 먹었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흔하지만 제철에 나는 부추도 늘 귀하게 여겼다. 부추든 다른 채소든 계절별로 가장 먼저 나오는 식재료 중 으뜸인 것을 가장 먼저 제사상에 올리거나 천신했을 뿐이다. 조선 후기 문신 심조(1694∼1756)는 문집 ‘정좌와집’에서 ‘봄에는 (제사상에) 부추를 올린다. 그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추를) 곡식 대신으로 사용한다. 옛사람들이 부추를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라고 적었다. 부추는 귀한 곡물만큼 귀한 존재였다.

정약용은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추 베는 법’을 자상하게 이른다. ‘(부추 등 채소를) 뜯는다(Q·도)는 것은 줄기를 절단하는 것을 이른다. (부추를 낮에 베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한낮에 부추(구)를 자르면 칼날이 닿은 곳이 마른다. 부추를 기르는 데 해로우니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꺼릴 따름이지 먹는 사람에게 해가 있어서가 아니다’(‘다산시문집’).

부추는 환자의 건강식, 혹은 치유식으로도 사용하였다. 인조 24년(1646년) 5월 19일의 기록에는 중환인 중전에 대한 음식, 약물 처방 내용이 실려 있다. ‘술시에 저녁 수라를 조금 올렸는데 연근채(蓮根菜)와 구채(구菜)도 약간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이틀 후인 5월 21일의 기록에도 ‘오늘 이른 아침에 구채죽(구菜粥) 한 종지를 다시 올렸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승정원일기’). 부추는 궁중에서 제사에 사용하거나 죽, 채소반찬 등으로도 널리 사용했다.

도교, 불교의 ‘오신채’는 조금씩 그 내용이 다르지만 부추는 늘 포함되었다. 제사를 모시기 전에는 냄새가 심하게 나는 부추는 금기 식품이었다. 물론 제사상에는 부추가 있었을 터이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부추#다산시문집#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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