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04>혼자서도 잘 노는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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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이 끝나 곧장 집으로 간다.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청소를 마치면 드디어 즐거운 시간. 만화책과 외국 드라마에 새벽까지 흠뻑 빠져든다. 이영희의 에세이 ‘어쩌다 어른’에 나오는 그녀의 일상이다. 이른바 혼자서도 잘 노는 여자다. 남자들 관점에선 “그게 뭐?”랄 수도 있겠지만 여자 세계에는 혼자서는 절대로 못 노는 이가 훨씬 많다.

적지 않은 남성이, 여자 무서운 줄 모를 때에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스타일을 ‘여성스럽다’며 선호한다. 문제는 이런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즐거움을 자가 발전으로 충전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턴키 방식으로 떠넘긴다. “나를 좀 어떻게 해줘.”

게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모를 때가 많다. 이 친구를 보곤 이러면 즐거울 것 같다가 다른 친구를 보면 또 저래야 할 것만 같다. 어디가 가려운지도 모른 채 남의 손에 등을 맡겼으니 꼼지락대며 긁어준들 시원할 리가 없다.

혼자 지내지 못하는 여성의 의존성을 사회 구조의 산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미국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플로렌스 포크는 저서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에서 여성 특유의, 혼자라는 두려움의 근원을 성장 환경에서 찾아낸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자매, 친구 등 타인과 함께하는 공동의 경험을 쌓을 뿐 혼자만의 선택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원초적인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삶을 채워 나갈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으니 결핍을 인식할 때마다 곁에 있는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혼 여성들의 대화가 아이 자랑이나 남편 탓, 시댁 험담으로 채워지는 이유다.

혼자 못 노는 아내는 ‘남편을 꼼짝 못하게 하는 아내’와 동전의 양면이다. 혼자 즐거워 본 경험이 없으니 남편이 다른 뭔가에 몰입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심심한 소녀가 있는 것이다. “놀아줘.”

혼자서도 잘 노는 여자에겐 은근한 매력이 있다. 혼자서 보낸 시간이 쌓아 올린 자신감이 독특한 취향만큼이나 분명하게 얼굴과 표정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인 상태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여성들 또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채울 콘텐츠와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는 좋아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뤄 두기만 하는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은퇴 후에도 수십 년을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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