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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임재영 기자, 사하라 사막마라톤 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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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임재영 기자, 사하라 사막마라톤 완주기

동아일보입력 2014-04-26 03:00수정 2014-04-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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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처럼 발을 찌르는 모래… 고통 삼키며 달린 244km
세계 1000여 명의 선수가 세계 최고 권위의 사막마라톤인 MDS에 참가해 레이스를 펼쳤다. 이들은 자신의 식량, 장비 등을 담은 배낭을 메고 일주일 동안 244km를 뛰고 걸었다. 사하라 사막=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모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모래는 더욱 발을 끌어들인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다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악몽이었다.”

사하라 사막 244km를 뛰고 걷는 레이스에 도전하던 어느 밤이었다. 레이스 도중 가장 힘든 과정인 일명 ‘롱 데이 레이스’(81.5km)를 하다 사막 한복판 모래 위에서 밤하늘을 베개 삼아 잠시 누웠다가 꿈을 꾼 거였다.

4월 10일 오전 5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방은 온통 암흑천지. 코스를 알리는 야광스틱 등만이 길을 안내했다. 저 멀리 성큼성큼 걷는 외국인 선수를 뒤쫓았지만 금세 간격이 벌어졌다. 듄(Dune)으로 불리는 모래언덕을 넘을 때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잠시 후 반달 주변으로 하얀 달무리가 생겼다. 구름 사이로 별빛이 쏟아졌다. 빛과 어둠이 임무를 교대하는 여명의 시간. 사하라가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양의 빛을 받은 모래언덕이 활짝 펼쳐졌다. 새벽에 먹이를 찾아 나선 낙타 어미와 새끼는 느긋하게 풀을 뜯었지만 결승선을 향하는 발걸음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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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바쁘지만 발은 천근만근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집이 잡힌 발바닥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모래밭이든, 자갈밭이든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를 참고 또 참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달리고 또 달렸다.

서바이벌 레이스

6일부터 12일까지 모로코에서 열린 제29회 MDS(Marathon Des Sables·사막마라톤). 세계 최고 권위의 사막마라톤이다. 사하라 사막 북서부 지역을 걷고 뛰는 이 대회에 한국 기자 가운데 처음으로 완주에 도전했다. 1구간 34.0km, 2구간 41.0km, 3구간 37.5km, 4구간(롱 데이) 81.5km, 5구간 42.2km를 6일 동안 진행한 뒤 7일째 되는 날 7.7km의 유니세프(UNICEF) 자선레이스를 펼친다. 올해는 45개국 1029명이 참가했다.

사막마라톤은 일반 마라톤과는 다르다. 일주일간 자신이 먹을 식량과 장비 등을 배낭에 짊어진 채 뛰고 걸어야 한다. 선수가 자급자족하는 ‘서바이벌 달리기’다. 대회 주최 측에서 조명탄, 위성위치추적기 등을 지급하지만 레이스 기간에는 물과 야영에 필요한 베르베르 텐트(모로코 현지 베르베르인들이 사용하는 삼각 형태의 천막), 의료 등만 지원한다. 외부에서 식량, 차량 등의 도움을 받으면 ‘실격’된다. 출발과 도착, 체크포인트(CP·코스 중간 점검 지점) 등에서 정해진 일정량의 물을 받지 않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도 페널티가 주어진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출발한 레이스의 시작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사하라 사막은 도전자를 시험하듯 장장 15km에 이르는 모래언덕을 통과하라고 요구했다. 고운 흑설탕을 뿌려놓은 듯한 사막 모래는 밟으면 밀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악마의 구덩이’였다. 무릎을 펴고 서 있어도 그대로 미끄러졌다. 미세한 모래먼지는 신발의 숨구멍을 뚫고 양말 속까지 침투해 발과 마찰을 일으켰고 곳곳에 물집이 생겼다.

사하라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한국 선수들이 유니세프를 위한 자선 레이스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역경을 딛고 결승선을 통과한 이들은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다.
간신히 모래언덕을 지나 평지에 다다랐지만 사하라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굳은 흙처럼, 단단한 바위처럼 보이는 바닥을 밟으면 발이 쑥 빠졌다. 참가 선수 대부분이 혀를 내둘렀다. 전체 레이스 구간 가운데 200km에 가까운 코스가 모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더라도 단단한 흙길이면 감사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막에서 태양의 열기는 무서우리만큼 뜨거웠다.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며 몸을 달궜다. 바깥에 드러난 피부는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변했다. 건조한 날씨다 보니 땀이 흘러내리자마자 말라 버렸다. 그게 다가 아니다. 방심하면 쓰러지기 십상이다. 실제로는 상당한 양의 땀을 흘리기 때문에 탈수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소금을 챙겨 먹어야 했다.

모래언덕과 태양의 열기,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까지 참고 견뎌야 했다. 식량을 비롯해 침낭, 램프, 칼, 호루라기, 소독약 등의 필수 장비 외에도 비상식량, 여벌 옷, 코펠, 매트, 스틱, 테이프, 자외선 차단제, 휴지 등을 합치면 배낭 무게는 10kg이 넘었다. 여기에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1∼3L의 물을 담으면 가방은 더 무거워진다. 특히 사막에서의 마라톤은 ‘무게와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레이스가 진행될수록 식량이 사라지기 때문에 배낭의 무게는 줄어들지만 체력 고갈도 심하기 때문에 몸으로 느끼는 배낭의 무게는 처음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가슴속 오아시스

힘든 레이스를 계속하면서 낯설었던 사하라는 어느새 익숙해졌다. 모래언덕은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낸 훌륭한 조형물이었다. 태양이 뜨거운 열기로 모래를 바짝 말려놓으면 바람이 불어 신비한 능선으로 조각했다.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산, 거대한 모래성이 병풍처럼 펼쳐진 가운데 메마른 호수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불모의 땅에서도 국화, 메꽃과 계통의 꽃이 띄엄띄엄 꽃망울을 활짝 펼쳤다. 물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데도 그들은 질기게 생명을 퍼뜨리고 있었다. 사막의 처음과 끝에 자란다는 타마리스크, 예수의 가시관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아카시아(싯딤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는 열기로 가득한 사막의 평원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밤하늘을 무수히 수놓은 별빛은 축복이었다. 북두칠성, 오리온자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지친 몸과 마음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사하라 사막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기자 같은 이방인에게는 ‘환상’ 그 자체였다.

밤하늘에서 위안을 얻은 900여 명의 선수들이 12일 오전 최종 출발선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픈 발을 참고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마치 ‘사하라의 인간펭귄’을 보는 듯했다. 며칠 동안 입은 옷에는 땀과 소금기가 섞인 하얀 줄무늬가 징표처럼 새겨졌다. 제대로 씻지 못한 몸, 누런 옷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배어 나왔지만 사막 달리기는 계속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바닥으로 어깨로 통증이 더해갔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모래언덕을 지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즈음, 결승선이 눈에 보였다.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고 끝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희열이 복받쳐 올랐다. 무릎을 꿇으며 나도 모르게 “해냈다”를 외쳤다.

극한의 레이스를 펼치는 이들이 가장 자주 듣는 “왜 가요”, “힘든 것을 왜 해요”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기자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고난을 극복한 뿌듯함이었다.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에 ‘오아시스’가 생겨난 것은 분명했다.

샘솟는 열정

사하라 사막마라톤 레이스 도중 야영을 하는 텐트 위로 쏟아지는 별빛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줬다.
이번 MDS에 한국에서는 기자를 포함해 모두 17명이 도전장을 냈다. 백전노장의 울트라 마라토너를 비롯해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를 자처하는 여성, 전역을 앞둔 육군 대령, 대학 제적생, 동물병원장, 방송 촬영을 위한 연예인 등으로 다양했다. 참가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완주’라는 공통 목표를 가졌다.

인천 부평구의 ‘여성 마라토너 3인방’으로 불리는 이현숙(62) 양미례(52) 권영옥 씨(46)는 항공사의 실수로 식량과 장비 등을 담은 짐을 잃어버린 악조건 속에서도 결승선을 통과하는 근성을 보여줬다. 양 씨는 “10년의 꿈이 모두 사라질 상황이었다. 부풀었던 마음은 위기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나를 위한 휴가’를 맘껏 즐겼다고 입을 모았다.

진로를 놓고 방황하다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모아 덜컥 참가한 고려대 제적생 임상우 씨(25), 18개월짜리 딸에게 ‘용감한 엄마’를 보여주고픈 김혜림 씨(32)는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않은 채 젊은 혈기를 믿고 ‘겁 없는 도전’에 나섰다. 발이 수많은 상처로 가득했지만 완주에 성공한 뒤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도 배웠다. 국내에서 울트라 마라톤 100회, 풀코스 마라톤 100회 이상을 모두 달성한 이도희 씨(61)는 “한정된 식량과 물로 레이스를 펼치다 보니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풍족하게 생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질적인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내면은 무너진다.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해외 각종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안병식 씨(41)는 “그동안 무릎이 안 좋다는 이유로 너무 안일했다. 선두권 선수들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조금만 연습하면 경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 대회에서 20위권에 진입한 아시아 선수가 없는 것으로 안다. 귀국하면 곧바로 몸만들기를 시작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번 MDS에 참가한 1029명 가운데 917명이 완주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14명이 완주했다. 도전에 대한 성취감, 포기하고픈 마음을 딛고 일어선 자부심을 얻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나 감회는 모두 달랐지만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낸 것만은 분명했다.

:: MDS ::

1984 년 당시 28세의 프랑스인 콘서트 프로모터인 파트리크 보에(현재 대회 매니저)가 홀로 350km의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뒤 1986년 23명이 참가한 최초의 사막마라톤 대회인 MDS를 열었다. 해마다 규모가 늘어 최근 매년 1000여 명이 참가한다. 130명의 코스 자원봉사자, 450명의 진행요원, 50여 명의 의료진이 지원하고 12만 L의 물, 300동의 텐트, 120대의 차량이 동원된다. 촬영과 긴급구조를 위해 2대의 헬기가 뜨고 위성통신시설이 갖춰진다. 한국에서는 2001년 당시 은행 지점장이었던 박중헌 씨가 처음으로 참가한 뒤 매년 도전하고 있다.

와르자자트(모로코)=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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