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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민화의 세계]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의 서민버전,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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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민화의 세계]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의 서민버전,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

동아일보입력 2012-06-16 03:00수정 2012-06-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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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상징 해와 달로 부부 백년해로 기원
‘일월오봉도’(18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종이에 채색, 가로세로 369.5×162.0cm. 하늘을 상징하는 해와 달, 땅을 상징하는 오악과 바다, 그리고 이들을 이어주는 소나무로 구성돼 음양오행사상을 드러낸다. (위) ‘일월부상도’(19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베에 채색, 가로세로 122.0×149.5cm. 천하를 상징하는 오악보다는 소나무에 걸린 해와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강조해 부부의 화합을 기원한다. (아래)

정전(正殿)은 궁궐의 중심이다. 정전 중앙에는 용상이 있다. 왕이 앉아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다. 그런데 용상의 뒤편에 둘러쳐져 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이다.

해와 달은 하늘을 나타내고, 다섯 봉우리의 산과 바다는 땅을 대표한다. 소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하늘사다리’ 역할을 한다. 음양오행의 사상으로 우주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 중심에 왕이 있으니, 이 그림은 왕의 권력이 지금처럼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란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왕의 권의를 나타낸 오악


현재 남아 있는 일월오봉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병풍이다. 가로 길이가 4m에 가까운 크기에 웅장하고 생동감 넘치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산에는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바다는 둥글게 도식화된 파도와 하얀 물보라로 장식돼 있다. 소나무를 묘사한 부분에선 붉은색의 줄기와 녹색 이파리들이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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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풍에서는 다섯 봉우리의 산이 크게 부각돼 있다. 중앙의 산이 좌우의 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은 임금이 좌우에 신하를 거느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섯 산봉우리는 ‘오악’이라 하여 각기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를 대표한다. 중국의 경우 중악 숭산(嵩山), 동악 태산(泰山), 서악 화산(華山), 남악 형산(衡山), 북악 항산(恒山)을 오악이라 불렀다. 신라에서는 중악의 팔공산, 동악의 토함산, 서악의 계룡산, 남악의 지리산, 북악의 태백산을 오악이라 일컬었다. 옛 문헌에서는 이런 다섯 봉우리를 그린 그림을 ‘오봉도(五峯圖)’ 혹은 ‘오악도(五岳圖)’라 불렀다. 이런 그림에서는 산이 차지하는 위상이 상당히 컸다.

■부부를 상징한 민화의 일월

19세기에 그려진 민화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에서는 산봉우리보다 ‘일월’의 비중이 더 크다. 게다가 해와 달 주변을 꽃구름으로 장식해 그 위상이 돋보이게 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 해가 뜨겁게 작열하고 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흰 달이 밝게 빛난다.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우주의 축으로 삼은 것이다.

나무 아래로는 뾰족한 산봉우리들과 바다 물결이 춤추듯 너울댄다. 이 그림에서 산은 나무보다도 작다. 일월과 나무를 그림의 중심으로 삼은 까닭은 서민에겐 오악으로 대변되는 권위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더 소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화 일월부상도를 해석하는 핵심은 ‘소나무에 걸린 해’와 ‘오동나무에 걸린 달’이다. 전자가 왕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왕비를 상징한다. 여기서 소나무는 일월오봉도처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우주의 나무라기보다는 해와 함께 왕을 가리킨다. 반면 오동나무는 봉황이 깃드는 나무로 달과 관련지어 왕비로 해석할 수 있다. 조류의 왕인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는다고 했다.

■일상으로 끌어내린 우주적 존재

이 그림에서 우주적인 존재를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장치는 여러 곳에서 보인다. 해와 달을 품은 나무는 그림 속 그림, 즉 화중화(畵中畵)로 처리하고, 마당은 꽃이나 풀과 조화를 이룬 수석으로 장식하여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림 아래 보이는 앞마당에는 찔레, 불로초, 매화로 장식된 괴석 세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 그림의 무대는 일상의 공간인 셈이다.

이처럼 ‘일월부상도’에는 우주적인 상징과 일상적인 상징이 중첩돼 있다. 그래서 부부의 화합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와 달처럼, 왕과 왕비처럼 부부가 영원히 해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일반 서민들이 혼례 때 왕과 왕비의 복장으로 혼인식을 치르듯이 우주적인 상징에 기대어 서민의 현실적인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궁중의 ‘일월오봉도’가 장엄한 다큐멘터리라면, 민화 ‘일월부상도’는 서정적인 드라마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림의 제목 중에 부상(扶桑)이란 용어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름을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그림에 적합한 용어는 아니다. 부상은 중국 신화에서 동쪽 바다에 있는, 키가 수십 장이 되는 신목(神木·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신성한 나무)이다. 그 아래에는 아홉 개의 해가 있고 윗가지에 해가 하나 더 걸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월부상도에선 부상이 아닌 소나무가 등장하고, 해뿐만 아니라 달도 등장한다.

무명화가는 궁궐 깊숙한 곳에 있던 그림을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내렸다. 천하를 지배할 일이 없으니, 오악이면 어떻고 십악이면 어떠한가. 작지만 많은 산들이 줄을 이어 산맥을 이룬다. 더구나 하늘의 세계도 그리 높지 않고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소나무와 오동나무에 걸려 있는 해와 달은 길거리의 가로등처럼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장 chongpm@gju.ac.kr
#민화#일월오봉도#일월부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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