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쇠고기·4대강·FTA… 반대 반대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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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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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 여중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먹고 죽기는 싫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던 광우병 광란이 잊혀질 만하자 이번엔 ‘나라 팔아먹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 투쟁이다. 한미 FTA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는 절규다.

광우병 광란 닮은 FTA 무효 투쟁

연간 무역액 1조 달러, 수출 세계 7위의 통상(通商)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다. 10년 전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급부상을 예측해 적중시켰던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이 사흘 전 MIKT(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의 약진을 예고했지만 한미 FTA 반대세력에게 한국은 “통상주권을 잃은 나라”일 뿐이다.

2008년 진보신당 소속의 심상정 전 의원은 한미 쇠고기 협상 당국자인 농림·외교부 장관, 농림부 차관보,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광우병 5적(賊)’이라고 딱지 붙였다. 지난달 민주당 소속 정동영 의원은 한미 FTA 협상 주역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낯선 식민지로 끌고 가는 옷만 입은 이완용’으로 묘사했고, 민주당 민노당 등 야5당은 어제 드디어 김 본부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3년 반 전 서울 도심을 뒤덮었던 광우병 시위자 가운데 요즘도 쇠고기를 미국산인지 아닌지 따져가며 먹는 사람이 있는가. ‘미국산 쇠고기는 양잿물보다 위험하다’는 괴담을 퍼뜨리며 “국민 생명권 사수”를 외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민 생명권이란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는다.

광우병 촛불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8년 5월 2일이었다. 그에 앞서 4월 26일 북한의 대남혁명전위조직인 반제민전은 자체 웹사이트인 ‘구국전선’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라는 대남 선동문을 띄웠다. 북은 촛불시위 투쟁지침까지 잇달아 ‘하달’하면서 “더욱 과감한 투쟁으로 이명박을 제때에 매장해야 한다”고 남측 시위꾼들을 채근했다.

요즘 북한은 한미 FTA를 ‘망국조약, 살인협정’이라고, 정부여당을 ‘이완용, 사대(事大) 매국노’라고 낙인찍는 대남 선동에 매진하고 있다. 비준에 찬성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끝장내야 한다고 부추긴다. ‘통상주권 상실, 미국경제 편입’을 입에 올리는 국내 일부 세력의 주장과 참 비슷하다.

지금은 세계 최빈국으로 추락했지만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잘살았다. 현재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의 20배 이상이고, 국민총생산은 40배를 넘는 극단적인 경제 격차는 바로 개방과 폐쇄의 결과다. 쇄국(鎖國)으로 이천수백만 주민을 굶기면서 개방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한미 FTA를 “을사늑약과 똑같다”고 하는 저들이 측은하다. 광우병 시위 때도 북한은 썩은 쇠고기조차 없어서 못 먹는 주민들을 외면한 채,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며 우리 국민을 걱정했다. 이번엔 우리가 미국과 FTA 맺은 걸 걱정해준다. 넉살도 좋다.

“진보의 개방 반대론 맞은 게 없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불화(不和)한 편이다. 하지만 2007년 6월 칼럼집 ‘대한민국 되찾기’를 내면서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했다. ‘2007년 4월 2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교섭의 시작도 마무리도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했다. 이 사실은 노 대통령이 개방, 경쟁, 자유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발간된 저서 ‘성공과 좌절’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개방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WTO(세계무역기구) 가입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도 반대했는데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외국 자본이 들어와 한국 자본을 지배해서 한국 국민들을 노예화한다는 논리가 결국 다 바뀌지 않았습니까?”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하는 민노당이 한미 FTA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자기모순이다. 한미 FTA로 수출이 늘면 다수의 민노총 산하 노조원들이 그 수혜자가 된다. 그럼에도 한미 FTA 무효 투쟁에 앞장서는 것은 노조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미(反美) 반정부를 위해서일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FTA가 무효화되고 한미 관계가 균열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 김정은 부자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은 미국과 멀어진 한국을 지금보다 훨씬 만만하게 대할 것이다.

한미 FTA 반대세력은 국가 이익이나 절대다수 국민의 이익 이전에 자신들의 진영(陣營) 결속과 정권 탈환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이들이 이명박 정부를 겨냥해 벌인 광우병 투쟁, 4대강 투쟁, FTA 투쟁은 ‘잘못된 3대 반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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