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61>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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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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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넣어 만든 즙… 가슴까지 서늘한 괴이한 맛”

날씨가 더워지면서 팥빙수나 녹차빙수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빙수를 먹었을까. 고대의 동서양 모두 겨울에 저장했던 얼음을 꺼내 여름에 과일과 향료를 섞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요즘 빙수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현대식 빙수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기록을 보면 처음 빙수를 맛본 한국인은 고종 때인 1876년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일 것 같다. 기행서인 ‘일동기유(日東記游)’에 일본 왕을 접견한 후 외무대신 등과 식사를 하며 빙수 종류의 디저트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김기수는 여기서 ‘유리 술잔에 얼음으로 만든 즙을 담고 계란과 설탕을 넣었는데 맛이 달고 상쾌해서 먹을 만했지만 너무 차가워 많이는 먹을 수 없다…낯선 얼음 음료라며 자세히 설명했는데 얼음을 가루로 만들었지만 전부 얼음즙만 있을 뿐 얼음은 아니다…한 모금만 입에 들어가도 치아가 시리니 어떤 방법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기록했다. 설명으로 짐작해보면 빙수 혹은 서양 셔벗의 일종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얼음 음료로 빙제(氷製)라는 것도 먹었다고 했다. 생긴 모습이 가짜로 만든 산 같으며 오색이 찬란하게 빛난다면서 맛은 달아서 먹을 만하지만 한번 입에 들어가면 폐부까지 서늘해지니 이 또한 괴이하다고 적었다. 오색찬란하다는 것이 빨갛고 파란 색소를 뿌리고 미숫가루를 담았던 옛날 빙수와 상당히 닮았다.

김기수가 ‘일동기유’에 빙수처럼 생긴 얼음 음료를 신기해하며 기록한 것을 보면 조선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빙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개화한 일본도 1869년 요코하마에 처음 빙수 파는 가게가 생겼다. 그리고 1887년에 얼음을 갈 수 있는 기계가 발명돼 빙수가 널리 보급됐으니 현대 빙수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게다가 빙수에 단팥을 얹어 먹은 것은 더 나중의 일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어떤 식으로 먹었을까. 조선의 양반들은 얼음을 쪼개 화채에 넣거나 혹은 얼음쟁반에 과일을 담아 차갑게 식혀서 먹었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은 얼음쟁반에 신선한 연근과 참외, 과일 등을 담아 먹으며 여름에 더위와 갈증을 달랜다고 했다.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 역시 ‘얼음쟁반에 여름 과일을 띄워라/오얏 살구의 달고 신맛이 섞여 있다’라는 시를 읊었고 또 ‘얼음쟁반에 담은 과일에 치아가 시리다’는 시도 남겼다. 효종 때 활동한 조경이라는 문인도 ‘동사록(東사錄)’에서 ‘얼음쟁반에 얼음사탕(氷糖)을 담아서 손님을 접대한다’고 했다.

얼음을 직접 먹은 것도 아니고 쟁반에 담아 과일을 차갑게 만들었으니 여름이면 얼음 수요가 엄청났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세 군데 있었다. 현재의 동호대교 북단인 옥수동의 두모포(豆毛浦)에 있던 동빙고와 한강변의 서빙고, 그리고 왕실 전용의 얼음 창고인 내빙고다.

조선시대 정부의 재정을 기록해 놓은 책인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세 곳에 저장하는 얼음의 양이 18만5218정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정(丁)은 보통 사방 10cm라고 하니까 보관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 많은 얼음을 겨울이면 강변에 사는 백성의 부역으로 채빙한다고 했으니 양반들이 여름에 쓸 얼음을 공급하기 위해 노역에 동원됐던 백성들의 수고가 심상치 않았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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