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효녀 심청은 가부장 사회의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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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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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이정원 지음/228쪽/1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고전 소설 ‘심청전’을 우리는 ‘효(孝)’ 사상이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로 알고 있다. 그것만이 온당한 설명일까. 경기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가 보는 ‘심청전’은 사뭇 충격적이다. “심청전은,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동체가 그 딸을 살해한 이야기일 뿐이다.”》

‘장화홍련전’은 봉건사회 가부장제하에서는 불가능했던 계모의 악덕을 그렸다. 저자는 이 소설에 대해 “후처들이기가 빈번했던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품었던 공포가 빚어낸 환상”이라고 해석한다.그림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장화홍련전’은 봉건사회 가부장제하에서는 불가능했던 계모의 악덕을 그렸다. 저자는 이 소설에 대해 “후처들이기가 빈번했던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품었던 공포가 빚어낸 환상”이라고 해석한다.그림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이야기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심청을 울며 전송할 뿐 만류하지 않는다. 백미 삼백 석을 대신 내주겠다던 장승상 댁 부인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의 이념을 공유한 이념 공동체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딸이란 아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계약이 등장한다. 첫째, 아버지 심봉사와 부처님이 심청과 ‘눈 뜨기’를 거래한 것이고 둘째, 남경 뱃사람과 인당수 용왕이 심청과 ‘안전한 항해’를 거래한 것이다. 두 계약 어디에서나 심청은 어떤 이득도 없으며 단지 생명을 잃을 뿐이다. 따라서 심청의 죽음이 계약의 형태라 해도 공동체 안에서 정당화되지 않으면 그것은 살인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심청이 나중에 황후가 되는 과정은 그런 살인과 죽음의 보상이며, 나아가 죄책감 없는 살인의 실체를 은폐하는 서사적 장치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전(傳)은 춘향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장끼전 등 우리 고전 소설들을 말한다. ‘심청전’의 예에서 보듯, 누구나 그 안에 담긴 교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전을 저자는 서가에서 끌고 나와 기존의 해석과 시각을 비틀어 해석함으로써 ‘범(犯)’한다.

‘장끼전’에는 고소설 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의 은밀한 욕망이 담겨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배고픔에 지친 꿩 가족이 눈 덮인 콩밭을 헤매다가 콩 한 알을 발견한다. 까투리의 만류에도 장끼는 덥석 콩 한 알을 집어먹다가 덫에 걸려 죽는다. 까투리는 장끼의 장례식에 찾아온 다른 장끼에게 시집간다.

까투리가 홀아비 장끼가 찾아와 청혼했을 때 반응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까투리의 욕망이 드러난다. “죽은 낭군 생각하면 개가하기 박절하나 내 나이를 꼽아 보면 불로불소(不老不少) 중늙은이라. 숫맛 알고 살림할 나이로다. 오늘 그래 풍신을 보니 수절 마음 전혀 없고 음란지심(淫亂之心) 발동하네.”


저자는 “이 부분이 그리 음탕하거나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까투리가 고백하는 음란한 마음은 성에 대한 자연스럽고도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의 문제는 매우 진실한 것이면서도 수많은 소설에서 거의 정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의병장 홍길동은 과연 영웅인가.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조선의 반역자였던 홍길동은 임금에게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나 벼슬이 막혔음을 아뢰며 벼슬을 구걸하고 병조판서 벼슬을 받았다. 홍길동은 또 거짓이나 악이 없었던 율도국을 침략했다. 이 침략전쟁으로 무고한 군사들이 죽었고, 정당한 통치 질서는 훼손됐을 것이다.

홍길동에게는 부인이 여럿 있었고 그 자식들은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지위를 부여받았다. 군(君)은 일종의 서자이다. 물론 임금의 서자이니 사대부가의 서자와는 다르지만 능력에 상관없이 변두리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점은 같다. 홍길동은 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라며 울부짖던 서러운 사회제도를 그대로 남겨 놓았다.

민족 최고의 히로인인 춘향의 사랑을 ‘열녀 되기’라는 봉건적 코드로 읽으려는 시도에도 저자는 반대한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춘향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들에게 공동체가 지켜주어야 하는 ‘열녀의 고결함’은 안중에도 없다. 월매는 이도령과 이별한 뒤 울고 있는 춘향을 “기생이라 하는 것이 이별하다 늙느니라. 나도 어릴 적 이름 날릴 때 이별한 남정네를 셀 양이면 손가락이 아파 못 세겠다”며 타박한다. 신관 사또의 명을 받아 춘향을 잡으러 가는 군로사령들은 평소 도도하게 굴었던 춘향에 대한 악감정을 드러낸다. 춘향의 감정에 대해 조금도 존중하는 구석이 없다. 심지어 옥에 갇힌 춘향이를 찾아온 점쟁이는 그를 위로하는 척하다가 성추행을 한다. 이 밖에 ‘장화홍련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허구로, ‘토끼전’은 욕망이 넘실대는 가장 잔인한 소설로, ‘양반전’은 양반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이 결여된 작품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소설의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니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 논리를 따르자면, 기껏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열여섯 살짜리 소녀가 몸을 던지는 것이 ‘선’이란 것이다… ‘춘향전’을 보라. 사랑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여성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은 ‘암행어사’라는 판타지였다니,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한 편 한 편 서로 다른 고민과 숨결이 있는 많은 고전 소설을 권선징악이라는 계몽의 시선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고전 소설을 바라보아온 우리의 정형화된 시선을 깨는 데 저자가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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