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유쾌통쾌한 한국판 매트릭스 전우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31일 12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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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놀랍다.

그저 그런 퓨전 사극적인 액션 오락물을 상상했던 필자는 영화 '전우치'의 놀랍도록 넘치는 상징, 암시, 풍자와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결국 두 번을 관람했다.

전우치를 보면서 많은 영화들이 떠오르지만 그 핵심주제 면에서 두 가지로 압축한다면, '매트릭스'와 '쿵푸팬더'를 꼽고 싶다. 이 두 영화는 합리적이고 기독교적인 서구문명에 지친 현대인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일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는 뉴에이지 기풍을 대표하는 영화로 생각되는데, 바로 이런 주제를 한국적 전설과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영화가 전우치다.

500년 전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도인 천관대사(백윤식)의 망나니 제자 전우치(강동원)는 둔갑술로 임금을 속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다.
500년 전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도인 천관대사(백윤식)의 망나니 제자 전우치(강동원)는 둔갑술로 임금을 속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다.


현대로 넘어온 초보도사 전우치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어 살던 옛날 옛적, 지하세계에서 피리를 불어서 사학한 요괴의 마법을 잠재우던 신선들의 두목인 표훈대덕은 지하 감옥의 문을 잘못 열어버린 3명의 신선의 잘못으로 자신의 정체를 잊어버린 채 인간으로 환생하게 되고, 요괴와 요괴대왕인 화담(김윤석 분)은 지상으로 풀려나서 세상을 어지럽힌다.

최고의 도사가 되어 벼슬과 명망을 얻고 싶은 초보도사 전우치(강동원)는 짐승이면서 인간으로 변신한 자신의 심복인 초랭이(유해진)를 데리고 최고의 도사가 되는데 필요한 거울과 청동검을 찾아다닌다. 그는 청동검의 위치를 알려 주는 조건으로 이조참판의 부탁을 받고 보쌈을 하다가 사대부 가문 출신인 미모의 어린 과부(임수정)를 만나게 된다. 과부는 뜻밖에도 자신은 책읽기와 바느질을 싫어한다면서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전우치는 자신의 도술로 바다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한편, 요괴대왕인 화담은 도사의 탈을 쓰고 자신의 사악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피리를 찾아다니다가, 전우치와 그 스승인 천관대사를 만나게 되는데 대사의 수중에 들어온 피리를 빼앗기 위해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여 천관대사를 살해하게 된다. 스승의 복수를 결심하는 전우치와 초랭이는 화담에게 속은 3명의 신선들에 의해 그림 족자 속으로 봉인되고, 5백년이 지난 후인 현대의 서울도심에서 풀려나게 된다.

매트릭스와 쿵푸 팬더

이 영화를 말하기 전에 매트릭스와 쿵푸팬더를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매트릭스는 인간세계를 지배하게 된 기계군단들이 인간 모두를 인공 자궁 속에 가두고 컴퓨터속의 '가상의 세계'인 매트릭스를 뇌에 주입하여 실제 세계로 믿고 환상 속에 살아가도록 만들면서 인간으로부터 기계들이 필요한 에너지원을 흡수하게 만들었고, 이런 비참한 지배구조를 뒤엎기 위해서 싸우는, 깨달은 인간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 속에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테마가 숨겨져 있다. 그 하나는 인간들이 실제로 느끼며 살아가는 모든 희로애락이 사실은 내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세계라는, 즉 일체 유심조라는 '깨달음'을 얻는 자가 모든 생사고락과 윤회의 고뇌에서 벗어나 진정한 구원과 자유를 얻는다는 불교 내지 도교적 가르침이다. 이 영화에는 윤회와 카르마에 대한 다양한 암시도 담겨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테마는 이런 정교한 가상세계 프로그램을 창조한 기계대왕인 '아키텍트' 조차도 이 프로그램내의 변종인 '네오'와 '오라클'의 깨달음과 성장,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인간의 '사랑'을 통제하지 못하여 결국 인간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휴전을 하게 되는 데, 이것은 서구문명의 바탕이 된 기독교적인 믿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천관대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 전우치는 자신의 개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그림족자에 봉인됐다가 500년 후인 2009년 풀려난다.
천관대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 전우치는 자신의 개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그림족자에 봉인됐다가 500년 후인 2009년 풀려난다.


결국 이것은 20세기말 서구적 합리주의와 물질문명과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이 동양의 불교와 도교적 사상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진정 무엇이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뉴에이지'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매트릭스가 무겁고 치열한 투쟁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쿵푸를 너무나 배우고 싶은 미련한 곰이 사부를 만나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진정한 재능을 발견, 사악한 악마와 싸워서 마을을 구하는 내용의 쿵푸팬더는 어린이들도 즐길 정도로 정말 코믹하고 유쾌한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존재와 잠재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쿵푸팬더에서도 악마와 세상 사람들이 엄청난 능력을 얻기 위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용문서'의 비법이 실은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과 참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내용은, 큰사부가 복숭아꽃이 흩날리는 속에서 속세를 떠나면서 얘기했던 깨달음의 얘기들과 접목되어 이런 뉴에이지 사상을 정말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깨달음과 마음의 힘

영화 전우치도 이런 뉴에이지적인 불교 및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서 현대로 뛰어넘는 장면은 '윤회'를 암시한다. 즉 전우치와 초랭이가 그림 속에 갇혀 있다가 5백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에서 환생하는 장면은 인간이 과거의 희로애락을 반복하는 '윤회'의 굴레 속에 갇혀 있음을 뜻하는데, 불교나 도교에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자는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전우치와 스승 같은 '도사'들은 사물의 모습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마음을 현혹하는 도술을 부릴 수 있다. 그런데 초보도사 전우치는 원래 부적을 통해서만 도술을 부릴 수 있었지만, 진정한 도사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함으로써 점차 부적 없이도 도술을 부릴 수 있도록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은 네오가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마음의 힘을 이용해서 점차 더욱 강력한 전투능력을 배양해 나가는 것이나, 쿵푸팬더가 자신만의 쿵푸 기술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의 대사들은 이런 철학들을 암시하면서도 정교하고 치밀하게 전체 스토리 전개에 딱 들어맞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입신양명하라는 유교적 가르침보다는 속세의 성공은 허무한 것이라는 도교적 가르침이 진정인데 인간은 그것을 헷갈려 한다', '사람들이 미망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모든 인연은 고통이다', '죽음이 두렵냐?-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두려운 것이지요', '청동검과 거울은 진정한 도사가 되기 위한 상징이다' 등 생로병사의 번뇌, 윤회와 업보, 깨달음과 해탈과 관련된 상징적인 대사들이 영화 스토리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풍자

전우치가 현대사회에 도착해서 유흥가를 둘러보면서 '미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비웃는 장면이나, 왕이 없고 기업가들이 백성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에 간사한 장사아치들에게 휘둘리는 것을 걱정하는 장면들은 현대 한국사회를 풍자한다.

특히 전우치가 청동검을 찾기 위해 부패한 국회의원의 비밀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런 비판과 풍자의 백미를 보여주는데, 경호원들이 전우치의 도술에 휘말려 엉뚱하게 청동조각상들과 싸우는 장면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대끼며 전투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암시한다.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창고로 들어가려는 전우치 일행이 보안시스템을 만나면서 '신원을 확인하여 주십시요'라는 기계음성을 듣게 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에서 온 전우치 일행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이름과 직함, 어디 출신이며 누구의 제자라는 등 구체적으로 말하게 되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한 이 장면은 한편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의 지위와 배경에 의해 좌우되고 휘둘린다는 풍자를 담고 있다.

전우치는 이조참판의 부탁을 받고 보쌈을 하다가 사대부 가문 출신인 미모의 어린 과부(임수정)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전우치는 이조참판의 부탁을 받고 보쌈을 하다가 사대부 가문 출신인 미모의 어린 과부(임수정)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청동검을 찾는 창고에서 정경유착과 뇌물사건의 돈 상자를 발견하고, 그 와중에 비싼 명화들이 보여 지는 장면은 근년에 발생했던 정치자금 사과궤짝 사건, 모 재벌의 명화수집 창고 사건을 직접적으로 풍자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뉴에이지적 성향을 드러내는 기독교에 대한 풍자도 빼먹지 않는데, 신부로 변신한 신선에게 전우치가 '예수가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왜 예수에게 부탁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장면과 고해하러온 신자(화담)가 '신은 어떤 죄라도 용서하십니다'라고 말하는 신부에게 '신은 참 바쁘시겠네요.'라고 말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수많은 영화의 인용과 패러디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를 능가할 정도로 많은 영화의 장면들을 이용하거나 패러디하고 있다.

눈치 챈 관객들도 많겠지만, 전우치가 건물에서 떨어지는 과부를 구하는 장면(슈퍼맨), 전우치와 과부가 빌딩위에 우뚝 선 장면(베트맨), 도로위에서의 요괴와의 결투씬과 전우치와 과부가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매트릭스), 전우치와 초랭이가 거리의 전광판을 통과하고, 신선이 벽을 통과하다 다리가 벽돌사이에 걸려서 몸부림치는 장면(사랑과 영혼), 일제시대 세트장에서의 결투와 두 대의 전차를 던지는 장면(장군의 아들), 전우치와 요괴가 벽에 붙어서 대결하는 장면(스파이더맨) 등 이 영화에서 인용하고 패러디하는 장면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영화 후반부의 음악과 액션 전개는 한국식 퓨전 서부극인 '놈놈놈'의 분위기를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런 인용들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2009년 서울, 과거 봉인된 요괴들이 하나 둘 다시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500년 전 전우치를 봉인했던 신선들은 요괴들을 잡아 오면 
봉인에서 완전히 풀어주겠다고 제안하고, 전우치와 초랭이는 마지 못해 요괴 사냥에 나선다.
2009년 서울, 과거 봉인된 요괴들이 하나 둘 다시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500년 전 전우치를 봉인했던 신선들은 요괴들을 잡아 오면 봉인에서 완전히 풀어주겠다고 제안하고, 전우치와 초랭이는 마지 못해 요괴 사냥에 나선다.


호접몽과 데자뷔

이 영화의 백미는 역시 '인생이 일장춘몽이다'와 같은 장자의 호접몽 사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장자의 호접몽이란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 생각해보니 내가 나비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으로, 실제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꼭 예전에 꿈속에서 본 것 같은 데자뷔 현상과도 중첩된다.

영화 전우치의 클라이맥스는 전우치가 악마대왕과 혈투 중에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과거 스승과의 대화 장면으로 돌아와서 무엇이 꿈인지 무엇이 실제인지 헷갈려 하는 장면일 것이다. 또 전우치가 과부와 함께 예전에 도술로 보여줬던 바다의 그림 장면에 어리둥절해 하는 엔딩 장면도 바로 이런 호접몽과 데자뷔의 궁극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번 보고 쉽게 이해하기 힘든데 이는 한 화면에서 각 배우들이 각자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는데다 다양한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산만하다는 느낌을 갖기 쉽지만, 영화를 다시 볼수록 이런 다양한 암시들은 마치 퍼즐조각처럼 정교하게 스토리 전개에 기여하는 장면임을 알게 된다.

청동검과 거울-깨달음의 도구

이 영화에서 전우치는 진정한 도사가 되어 벼슬과 명성을 얻기 위해서 청동검과 거울을 찾고자 하는데,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이 영화의 핵심 고리다. 전우치가 가지고 있던 거울로 전반부에 초랭이는 자신의 원래 모습인 개를 확인하고, 후반부에 과부는 자신이 본래 표훈대덕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결국 거울은 내가 근본적으로 누구인가, 즉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도구인 것이다.

청동검은 전우치가 신선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채웠던 보이지 않는 족쇄를 끊어내는데 사용된다. 즉 자신을 속박하는 속세의 인연의 사슬을 끊는 용도임을 상징한다. 전우치와 요괴들과의 결투에서 특히 줄을 이용하여 얽어매거나 죽이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데 이것도 사람들이 속세의 인연의 굴레에서 고통 받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결국 전우치는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부적 없이도 도술을 부리는 방법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알 수 있는 거울과 지상세계의 인연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청동검까지 가지게 됨으로써 진정한 구원과 자유를 가지는 문턱에 도달한다. 이것이 과부와 함께 마지막에 도달하는 '바다'의 의미인 것이다.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요괴와 결투를 하는 전우치.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요괴와 결투를 하는 전우치.


과부는 '당신'이다

이 영화에서 과부의 존재는 이 영화의 뉴에이지적 핵심 주제를 반영한다. 과부는 원래 신적인 존재였지만 자신이 신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인간으로 환생해서 세상의 속박 속에서 살아간다. 과부는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여인의 당연한 의무였던 책읽기와 바느질을 싫어하고 자유를 원하는 여성으로, 현대에는 유명 여배우의 스타일리스트로서 궂은일을 해야 하지만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여자다.

전우치 일행을 만나서 좌충우돌하는 와중에서 그녀의 미모와 재능을 알아본 영화감독은 결국 그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고 싶은 동남아 해변 휴양지의 그림을 가지고 심상화를 하던 그녀가 결국 바다로 가게 되는 엔딩은 바로 자신이 바라던 소망인 '시크릿'을 이루고 자유와 구원까지 얻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근년에 우리사회에 소리없이 불어닥친 베스트셀러 '시크릿' 열풍이나 '생각대로~T', '소원을 말해봐'와 같이 내가 바라는 소망을 간절히 상상하면 이루어지며, 이것은 더 나아가 우리는 원래 신적인 존재였지만 윤회와 속박 속에 갇혀 살고 있고 따라서 자신의 내부 속에 숨겨진 잠재력과 신성을 깨달음을 통해 되찾으라는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자신이 원래 신적인 존재였음을 잊고 살아가는 과부는 바로 '당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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