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 연설문’ 책으로 나와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매년 10월 발표하는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는 시상식 며칠 전 스웨덴 스톡홀름 아카데미 강당에서 노벨상 수상 소감 연설 겸 강연을 한다. 이 연설문은 수상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 문학과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오르한 파무크,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알베르 카뮈, 토니 모리슨 등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 11명의 연설문을 엮은 ‘아버지의 여행가방-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문학동네·이영구 외 옮김)이 출간됐다. 책의 제목 ‘아버지의 여행가방’은 파무크가 2006년 발표한 수상 소감문 제목에서 따왔다.

파무크는 터키 출신으로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결핍감 때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결핍감을 분노와 상처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느 날엔가 우리가 쓴 것들이 읽히고 이해될 거라는, 왜냐하면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강조했다. 전후 일본의 모습을 성찰해 온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수상 소감에서 “아시아에서 일본 군대가 자행했던 비인간적인 행위를 고통 속에서 속죄하고, 그 바탕 위에서 마음 졸이며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소재로 한 ‘죄악의 땅’으로 데뷔한 조제 사라마구(1998년 수상)는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인 두 분을 문학 속의 인물로 탈바꿈시켜 두 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작가는 시대를 관찰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소감도 많았다.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한 뒤 200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은 “문학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를 지켜 나가야지 정치적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가장 높은 경지는 냉정한 눈으로 조용히 관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뮈는 1957년 수상 소감에서 “작가는 ‘진실에 대한 섬김과 자유에 대한 섬김’이라는 짐을 지고 있으며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이”라고 강조했다. 귄터 그라스(1999년 수상)는 “작가는 결국 자기 시대 안에서 태어난 것”이라며 “자신이 주체로서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주제가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수상 연설에서 공통적으로 문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르 클레지오는 ‘패러독스의 숲’이라는 제목의 2008년 수상 소감에서 문학이 지배계급의 사치이며 문학이 대다수 사람과는 무관한 사고와 이미지로 살찌고 있다는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토니 모리슨도 1993년 수상 소감인 ‘언어의 마술’에서 “억압적 언어는 폭력을 대변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즉, 그 자체가 폭력”이라며 언어가 잘못 사용됐을 때의 부정적 측면을 이야기했다. 고민에 대한 처방은 저마다 다르다. 르 클레지오는 “새로운 시대의 작가는 더 나은 삶의 모델을 낳겠다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고 가오싱젠은 “문학은 이런저런 주의의 속박을 벗어버리고 인간 생존의 딜레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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