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28>피아노-바이올린 연주자의 고달픈 목

  • 입력 2006년 6월 10일 02시 59분


코멘트
거북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목을 내민 자세로 연주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손보다 목과 어깨의 통증을 더 호소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거북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목을 내민 자세로 연주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손보다 목과 어깨의 통증을 더 호소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피아노 건반을 수놓는 피아니스트와 자판을 두드리는 타이피스트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뒷목 땅기는 직업’이라는 것.

컴퓨터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일해야 하는 직장인이 뒷목이 뻐근해 정형외과를 찾으면 십중팔구 ‘경부상완 증후군’이라는 진단과 함께 “일명 ‘피아니스트 증후군’ 또는 ‘타이피스트 증후군’”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그만큼 피아니스트와 타이피스트들에게서 대표적으로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라는 얘기다.

피아니스트 강충모 씨는 “뒷목이 뻐근하고 어깨까지 아픈 것은 연주 경력이 오래된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겪는 일종의 직업병”이라며 “통증이 심해지면 손가락까지 저려 오는 만큼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박민종(정형외과) 교수는 “목뼈는 원래 C자처럼 휘어 있어 약간 뒤로 젖힌 상태가 편한데 목을 앞으로 구부리고 긴장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치면 목과 어깨 근육에 부담이 가고 경직돼 아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주자의 목이 혹사당하는 대표적인 악기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왼쪽 턱밑에 악기를 갖다 대고 목을 왼쪽으로 기울인 자세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연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가 앞으로 나오고 왼쪽 허리는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자세가 된다.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었더니 척추 뼈가 S자로 휘어 있다더라.”(바이올리니스트 양고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연주자의 목을 보면 그들만의 특별한 ‘훈장’도 발견할 수 있다. 왼쪽 목 윗부분에 난 2∼3cm 크기의 거무스름한 자국이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부풀어 오르기도 하는 등 피부 질환도 앓는다. 악기 아랫부분이 닿는 쇄골에도 비슷한 게 생긴다. “늘 악기를 왼쪽 턱 밑에 끼고 살다 보니 악기가 닿는 목 부분의 피부가 마찰 때문에 검게 변하고 오돌토돌해지는데 없어지지 않는다. 연습을 심하게 할 때나 더운 여름철에는 고름이 생기기도 한다.”(서울시향 바이올리니스트 양유진)

목에 난 ‘영광의 상처’는 때론 ‘기쁨의 흔적(?)’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한 여성 연주자는 “학교 다닐 때 다른 악기 전공 남자들이 목에 난 자국을 보고 ‘어젯밤에 뭐 했느냐’고 놀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여성 연주자들이 목의 검은 자국을 가장 의식할 때는 목선이 드러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을 때. 그래서 목과 쇄골에도 얼굴처럼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바르는 등 ‘신부 화장’을 한다.

‘피아니스트 증후군’이라는 달갑지 않은 병명, 전혀 반갑지 않은 ‘S라인 척추’…. 열정적인 공연을 마친 연주자들은 무대 뒤에서 뻐근한 목덜미를 두드리며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 목이 아파 슬픈 직업이여∼.”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