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뮤지컬 '명성황후' 1일 런던무대 초연

  • 입력 2002년 2월 3일 17시 33분


영국 군함이 1885년 조선 땅 거문도를 유린한지 한세기가 훨씬 지난 2002년 2월 1일, 조선의 후예들이 ‘양이(洋夷)’의 땅 영국의 심장부 런던을 침공했다. 당시 조선의 비극적 역사를 담은 뮤지컬 ‘명성황후’로.

1일 오후3시(이하 현지시간) 런던 ‘웨스트엔드(Westend)’의 아폴로 해머스미스 극장. ‘명성황후’의 런던 초연을 앞둔 ‘드레스 리허설’ 현장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명성황후’는 95년 초연 이후 국내외에서 370회 공연에 50만명을 동원한 작품. 더 이상 손볼 게 없을 것 같은데도 연출진의 눈엔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한 일부 출연자가 조명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퇴장하려 몸을 움직이자 “암전되면 나가요!”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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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자 이문열씨 '명성황후' 런던공연을 보고
- 윤호진(제작자), 이태원(주연) 인터뷰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영국은 극장 공연의 역사만해도 줄잡아 400년에 달하는 세익스피어의 나라. 더구나 이곳은 뉴욕 브로드웨이를 석권한 뮤지컬의 황제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낳은 극장이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 뮤지컬 사상 최초의 영어 버전 공연이다.

오후 7시반. 공연 한시간전부터 밀려든 관객 1300여명은 막이 오르자 서양의 틀인 뮤지컬에 한국의 것을 담아낸 ‘명성황후’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택견과 농악의 춤사위를 섞은 듯한 무과(武科) 장면, 유일하게 한국어 가사로 한 명성황후 수태굿 장면 등 한국적인 것에 박수 소리가 컸다.

‘여우사냥’이란 암호로 불린 ‘명성황후’ 시해를 앞두고,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는 듯한 황후의 마지막 노래에는 장내가 숙연해졌다. 감동은 마지막 노래 ‘백성이여 일어나라(Rise People of Chosun)’가 합창되자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이어졌다.

이날 공연으로 ‘명성황후’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등 세계 뮤지컬 공연을 양분하는 두 곳에 모두 도전한 동양 최초의 뮤지컬이 됐다.

공연이 끝난 뒤 영국 초청인사 200여명은 “원더풀”을 연발했다. 80년대 주한대사를 지낸 영한친선협회 부회장 존 모건 경 부부는 “영국 땅에서 한국 뮤지컬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한국전 때 종군기자로 참전했다는 언론인 출신 로버트 엘리건트씨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극찬했다.

공연 후 관객들의 표정을 살피던 ‘명성황후’ 연출자 겸 제작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의 눈이 빛난다. 그는 런던 공연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창조하려 한다.

동양 최초의 브로드웨이 공연이라는 신기록에 들떠 적자를 무릅쓰고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밀고 나갔던 97, 98년의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공연 때와 달리 해외공연 사상 최초로 ‘남는 장사’가 목표다.

런던 공연 제작비는 17억원 정도. 16일까지 19번의 공연에서 유료관객 2만명이 들면 본전. 벌써 2만명의 5분의 1일 해당하는 4000명분의 입장권이 팔렸다.

윤대표의 욕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명성황후’를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처럼 십여년을 끄는 장기공연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것. 영어 버전을 들고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타임스지의 로즈마리 라이터 부국장 겸 수석논설위원은 “배우들의 영어 전달은 매우 훌륭했다. 영국의 일반 관객이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웨스트엔드의 벽은 여전히 높다. 최근에도 프랑스의 뮤지컬 ‘파리의 노틀담’이 사실상 참패했다. 영어로 노래한다고 한국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한말의 복잡한 열강 각축의 역사에서 외국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가능할까. 실제 적지 않은 관객들은 1막과 2막 사이에 프로그램 책자의 영어 배경 설명을 읽고 있었다.

어쩌면 ‘남는 장사’나 장기공연 성공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한국 작품이 뮤지컬의 본토 진공(進攻)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성황후 제작진은 지금보다 백배쯤 힘든 시절도 들소처럼 헤쳐나왔으므로.

런던〓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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