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 ‘1999년 지구종말’예언]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1999년이다.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가 ‘지구 종말의 해’로 예언했다는 바로 그 99년. 그가 1555년 내놓은 무시무시한 예언은 적중할 것인가. 아니, 그는 정말로 종말을 예언했던 것일까.

히틀러의 출현과 제2차 세계대전,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 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78년 이란 혁명, 81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 당선과 좌파의 승리, 86년 옛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을 4백여년전에 완벽하게 예언했다고 해서 전세계인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겼던 노스트라다무스.

‘99년7월 지구 종말’을 예언했다는 문제의 시를 보자. ‘1999년7월/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키기 위하여/그 때를 전후해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 아래 지배할 것이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공포의 대왕’‘앙골모아 대왕’‘마르스’라는 어휘들.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통설은 다음과 같다.

공포의 대왕은 세계대전이 일어나 하늘에서 퍼붓게 될 무기 세례라고 한다. 현재의 핵 위기, 군비 팽창 등이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다. 마르스가 군신(軍神), 전쟁을 뜻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외에 혜성 충돌설, 우주인 침략설도 있다.

앙골모아는 민중봉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앙골모아는 프랑스어 자클리의 다른 이름이고 자클리가 자크(중세 프랑스 농민)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루어 14세기 프랑스의 농민반란이라고 해석한다.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이를 막기 위해 무력이 동원되면서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나 인류는 끝내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술 더 떠 일본의 한 과학자는 우주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 나름대로 실험을 해본 결과 종말일은 7월이 아니라 99년8월18일이라는 결론은 내린 적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남는다. 이같은 설명이 후세인들의 해석이라는 점. 즉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하는 것도 실은 사건의 결과를 놓고 꿰맞춘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정말로 지구 종말을 예언했는지는 노스트라다무스 자신만이 아는 일.

문제의 시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보자. 노스트라다무스 해석에 있어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장 샤를 드 퐁브륀의 견해다. 그는 81년 ‘노스트라다무스, 역사적 예언가’라는 책을 펴내 노스트라다무스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 그 해석의 핵심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99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25년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 예언에 나오는 천문학적인 정보를 정밀 검토해 볼 때 그렇다는 설명이다.

퐁브륀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평화적으로 해석한다. 문제의 시 마지막 행을 ‘그후 마르스가 평화에 굴복하리라’라고 풀이함으로써 군신 마르스(전쟁)가 평화에 굴복하니 마지막 세계대전이 평화로 바뀐다는 설명이다.

퐁브륀은 나아가 2024년6월4일 프랑스와 이슬람국가 및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에 대동맹이 이뤄져 전쟁이 끝나고 대륙(유럽)과 이스라엘에 평화가 정착될 것으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풀이한다. 즉 금세기말전쟁기아가뭄 질병 환경재해의 고통을 겪고나서 2025년부터 지구에평화가찾아올것이란 결론이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무시무시함은 결국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언을 평화적으로 해석한 퐁브륀조차 94년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라 98년 지구에 엄청난 살육이 도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과연 그랬는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이자 예언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예언은 4행시로, 모두 1천1백여편에 달한다. 그 예언이 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극히 상징적 암시적이다. 그렇다보니 해석 역시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 원전은 라틴어의 영향을 짙게 받은 중세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 그 해석을 더욱 어렵게 한다.

동시에 노스트라다무스에게 드리워진 신비의 베일을 벗겨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도 인류의 멸망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후대 해석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를 무서운 예언가로 볼 것이 아니라 병든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던 뜨거운 인간으로 이해할 때 노스트라다무스는 종말을 고하는 저승사자가 아니라 평화의 메신저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을 멸망에 대한 계시가 아닌 재앙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태계 파괴, 핵 위험 등 끝없는 갈등에 시달리는 현재의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대목에서 퐁브륀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을지 맞지않을지는 우리 인류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정신의 부활을 통해 인류 평화를 뿌리내릴 것인가, 아니면 지옥으로 치닫는 물질만능주의의 행진을 계속할 것인가.”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도 좋을 듯 싶다. 99년은 종말의 해가 아니라, 인류 평화를 위한 마지막 진통의 해가 될 것이라고.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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