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공포의 전염이 더 무섭다[오늘과 내일/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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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탓하는 게 감염병 재난의 특징… 불신과 비난이 공포와 불안 가중시켜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살인사건이나 조폭의 칼부림 현장을 혼자 취재하다 보면 종종 등골이 오싹하다. 노란 폴리스라인 너머에서 전해지는 정체 모를 싸늘한 기운 탓이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승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하얀색과 검은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지하철역에 멈출 때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렸지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직업 탓이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뒤 출근길 지하철 승객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날 승객들의 마스크 착용률을 보고 코로나19의 확산과 소강을 판단하는 것이다. 월요일 지하철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이 100명 중 2, 3명에 불과했다.

그럴 만도 하다. 18일 대구에서 31번 환자(61·여) 발생 후 코로나19 사태는 180도 바뀌었다. 확진 환자는 하루에 약 50명, 100명, 200명 안팎씩 늘었다. 매일 2배 규모다. 주말 이틀에만 400명이 넘게 증가했다. 대구와 경북에 많았지만 그동안 환자가 없던 광역자치단체는 물론 서울, 경기의 크고 작은 시군구에서도 속출했다. 월요일 지하철의 분위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분명 재난이다. 포항 지진, 태안 기름 유출, 세월호 침몰 같은 자연·사회재난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감염병 특성상 사상자 규모에 상관없이 불안감이 더 크다. ‘나도 걸릴 수 있다’는 걱정 탓이다.

감염병 같은 이른바 ‘특수재난’의 특징은 또 있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다. 보통 재난 피해자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염병은 다르다. 피해자 즉, 확진자에게 비난이 집중된다. 감염의 책임을 오롯이 환자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심민영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재난 때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 일반적이지만 (감염병의 경우) 국민적 비난이 몰리며 심리적 타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불신과 비난이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는 것이다. 갈수록 대중교통은 물론 학교나 직장까지 기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출입문 손잡이를 잡아주는 등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시민의식이 이미 사라지고 있다. 극단적 상황이 되면 단순히 확진자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동료와 선후배를 멀리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일상이 하나둘 위축되면 사회 전체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실제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감염보다 확진자가 됐을 때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다. 유 교수는 “확진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부메랑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사람뿐이 아니다. 확진자가 많은 대구와 경북을 상대로 퍼지는 근거 없는 오해와 가짜뉴스도 공포를 부추긴다.

심 단장은 “이럴 때일수록 확진자나 격리자, 의료진에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 공개도 중요하다. 과도한 공포가 아닌지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안과 공포를 없앨 가장 중요한 조치는 완벽한 방역이다. 현재 시행 중인 정부의 방역 정책이 실패한다면 심리적 방역 조치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 앞에 먼저 무너진다면 바이러스에게도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코로나19#불신과 비난#불안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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