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그림책 1인자 최숙희, ‘열두 띠…’ 표절 시인 영구절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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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권 팔린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 충격… 최씨, 본보에 이메일

국내 그림책 분야의 1인자 최숙희 씨(51·사진)가 수십만 권이 팔린 자신의 대표작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이하 ‘열두 띠’)의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최 씨는 24일 “책을 사랑해준 분들에게 너무 죄송스럽다”며 표절을 인정하는 내용의 A4용지 2장 분량의 이메일을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 교과서에도 작품 실린 그림책

최 씨는 이메일에서 “1997년 ‘열두 띠’ 제작 당시 제작사인 보림 출판사 편집자가 일본 그림 작가 세가와 야스오 작품을 가져와 ‘이 책을 참고해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며 “당시에는 콘셉트를 차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못 했다. 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밝혔다.

실제 ‘열두 띠’ 속 강아지가 얼굴을 가리는 그림은 세가와의 작품 ‘없다 없다 까꿍(いない いない ばあ)’ 속 고양이가 얼굴을 가리는 그림과 형식과 동작이 매우 유사하다(그림 참조). 쥐가 쌀 포대 위에 서 있는 그림 역시 찍어낸 듯 닮았다.

‘열두 띠’는 이후 매년 2만, 3만 부씩 팔려 누적 판매가 50만 권을 넘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태국어와 몽골어, 캄보디아어 등으로 번역돼 수출됐다. 최 씨는 “‘열두 띠’가 사랑을 받을수록 괴로움도 커졌고 출판사에 절판을 요구했다”며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가슴에 납덩이를 올린 것 같았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지난해 이 책을 영구 절판했다.

표절 의혹을 받아온 최숙희 씨의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 ‘강물을 삼킨 암탉’ ‘너는 어떤 씨앗이니?’. ‘열두 띠…’는 최씨가 표절을 시인하고 절판시켰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표절 의혹을 받아온 최숙희 씨의 ‘열두 띠 동물 까꿍놀이’ ‘강물을 삼킨 암탉’ ‘너는 어떤 씨앗이니?’. ‘열두 띠…’는 최씨가 표절을 시인하고 절판시켰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최근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등 학부모들이 주축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 씨의 ‘열두 띠’ 외에 다른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도 제기됐다. 이들 커뮤니티에는 ‘최숙희 작가에게 묻습니다’란 제목과 함께 작가 작품과 해외 작가의 그림을 비교하는 글들이 게재됐다. 이에 동아일보 취재팀이 22일부터 최 씨와 출판사를 취재하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최 씨가 심경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최 씨는 ‘너는 기적이야’ ‘나도 나도’ 등 내놓는 작품마다 10만 부 이상 판매가 보장되는 국내 그림책 분야의 독보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2009년 발간한 ‘괜찮아’는 50만 부 이상 판매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2005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2007년 스웨덴 국제도서관 초청작가 등으로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 다른 작품도 의혹 제기…학부모들 “배신감 느껴”

최 씨는 다른 그림책에 대한 표절도 일부 인정했다. 그의 ‘강물을 삼킨 암탉’(2002년) 속 닭과 여우의 모습은 미국 그림책 ‘냄새 고약한 치즈맨과 멍청한 이야기들’(1992년) 속 닭, 여우의 얼굴 형상과 꼬리 형태, 전체적인 윤곽, 붓 터치가 유사하다. 강물에 눈과 입을 넣어 의인화한 장면도 두 책 모두에서 나온다. 최 씨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해외 작가 그림을 흉내 내어 습작을 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해당 작가의 그림을 고민 없이 차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의 2013년 작품인 ‘너는 어떤 씨앗이니?’ 속 섬꽃마리 그림 역시 백지혜 작가의 ‘꽃이 핀다’(2007년) 속 그림과 표현, 형식이 흡사하다. 이에 대해 최 씨는 “이 책은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 씨는 표절 지적을 받은 꽃 그림을 수정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 작가가 표절을 인정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 씨와 출판사를 비판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 이모 씨(37·여)는 “최 작가 책을 아이들에게 자주 선물했다. 표절이라니 배신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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