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카뮈의 단두대와 21세기의 사형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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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알베르 카뮈의 어린시절. 할머니는 손자에게 뒤뜰의 닭 한 마리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할머니는 부엌칼로 닭의 머리를 자르고, 그릇으로 피를 받았다.

그 장면은 소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카뮈는 1957년에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썼다. 단두대 처형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그 감동적인 글은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읽힌다.

만약 당신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면

사형제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작품은 카뮈의 글만이 아니다. 미국 영화 '데드 맨 워킹'에서 숀 펜(매슈 역)이 사형되기 직전 남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살인은 나쁘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누구든, 그게 나이든, 여러분이든, 정부이든 말입니다"라는 말이나, 한국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슬픈 눈의 사형수(강동원이 연기)가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은 사형제의 잔혹성을 감성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무심코 밟힌 벌레의 몸부림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절절한데, 사람의 목숨에 이르면 그 소중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한 명 한 명이 소(小)우주이며 절대적 가치인데… 국가가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어떻게 쉽게 찬성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사형집행을 둘러싼 논란의 실상을 취재하면서, 카뮈의 성찰은 어쩌면 지난 시대에 국한된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이념적 음모가 깔린 처형이 난무하고, 범죄의 진실을 가려낼 과학이 미비했던 시대의 웅변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처형된 사람들 중에는 교화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무고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라고 카뮈는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무고한 사람이 사형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로 봐도 좋을 만큼 수사기법이 발달했고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는 기준도 매우 엄격해졌다고 말한다. 물론 현재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사형수 60명 가운데 누명을 쓴 사람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21명을 죽인 유영철, 10명을 죽인 강호순이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있을까.

0.00…1%의 가능성이라도 억울한 사형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앞으로 더욱 엄격해질 사형 선고기준에 비춰봐도 이의가 전혀 없을 수준의 흉악범에 대해 우선적으로 집행하면 된다.

사형제 반대 영화 속 사형수들은 한결같이 운명의 장난에 의해 주범으로 몰린 선한 청년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재 사형수 60명은 1인당 평균 3.4명을 죽였다. 대부분 진범임을 시인했다. 숀 펜이 연기한 사형수가 강호순이었다면, 강동원이 연기한 사형수가 유영철이었다면 영화의 감동은 어땠을까.

사형제가 정치·이념적 목적을 위해 남용될 가능성도 이젠 없다. 인혁당 사건, 조봉암 사형 같은 사법살인이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재연될 가능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형이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통계도 있다. 설사 예방효과가 없다 해도 이는 사형제의 존립 이유를 오해한 것이다. 사형제의 첫째 근거는 피해자를 대신한 국가의 응징, 정의와 형평의 구현이다.

이는 죽은 피해자가 우리와 함께 살았던 시절 서로 약속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나 내가 살인마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할 경우 남은 사람이 응징을 통해 그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자는, 내가 당하면 당신이 그 원한을 풀어 달라는 당부이고 약속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에게 "사적 보복은 하지 말라. 국가가 이성적 절차에 의해 징벌하겠다"고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사형수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가 있다면 이는 법무장관이나 사형제 폐지론자가 아닌 피해자 가족들이다. 모든 피해자 가족이 용서해주라고 청원할 경우 사형집행을 미루는 제도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무장관에게는 확정판결 이후 6개월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는 법규정을 무시한채 자비를 베풀 권한이 없다.

피해자 가족만 사형수 용서권한 가져

정부는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이유로 외교문제를 들지만 관료적 발상에 불과하다. 필자가 6일 "사형집행을 재개할 경우 실질적으로 어떤 외교적 불이익이 있을지"를 문의했지만 정부 담당자는 별다른 예시를 들지 못했다.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이는 사형제를 실시하는 미국 일본 등의 외교관들은 늘 감수하는 일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청와대의 논리는 더욱 옹색하다. 사형제에 대한 의견 통일은 어느 사회이든 불가능하다는 걸 청와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형집행 목소리가 거세지자 반대론자들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그야말로 낙인찍기이며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모두가 방기하고 있던 피해자들에 대한 약속과 책임을 김점덕이, 서진환이, 고종석이 환기시켜 준 것임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알베르 카뮈#사형수#사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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