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갓끈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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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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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idday Rest, 곽호진 (그림 제공 포털아트)
A Midday Rest, 곽호진 (그림 제공 포털아트)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이 신하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모두 취기가 올랐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습니다. 그러자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장왕을 모시는 여인의 옷을 끌어당겨 추행을 시도했습니다. 순간 여인은 기지를 발휘해 어둠 속에서 상대방의 갓끈을 더듬어 쥐고 그것을 끊어버린 뒤 곧바로 왕에게 고했습니다. “방금 불이 꺼지자 소첩의 옷자락을 당긴 이가 있어 그의 갓끈을 끊어 지니고 있으니 불을 켜거든 갓끈이 끊어진 자를 찾아내소서.”

여인의 말을 듣고 장왕은 어둠 속에서 잠시 망설인 뒤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오늘 과인과 술을 마시는 동안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즐기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겠소.” 왕의 말을 듣고 100명이 넘는 신하들은 일제히 어둠 속에서 각자의 갓끈을 끊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불이 밝혀진 뒤에도 잔치는 계속돼 군신 간의 여흥은 유쾌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3년이 지난 뒤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신하 하나가 선두에 서서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모두 이기게 해 마침내 초나라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종횡무진 용맹스럽게 싸우는 걸 보고 기이하게 여긴 장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과인의 덕이 부족해 그대처럼 뛰어난 신하를 일찍이 알아보지 못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그토록 용맹스럽게 싸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러자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습니다. “신은 오래전에 죽었어야 할 몸입니다. 예전에 제가 불이 꺼진 틈을 타 실례를 범했을 때 왕께서 인내와 기지로 저를 죽이지 않고 살리셨습니다. 저는 감히 그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뇌를 땅에 흩뿌리고 목에서 솟구치는 피로 적을 적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신이 바로 그날 밤 갓끈을 뜯긴 자이옵니다.”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복은(復恩)편과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등에 실려 있는 고사입니다. 여기에서 ‘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라는 의미의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베푸는 사람이나 그것을 갚는 사람이나 각자의 도리를 다하려 했다는 점에서 관용과 도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고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세상의 스마트한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인재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인재라고 내세운 인물들의 인사청문회가 도덕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불법의 일상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재가 자라날 만한 세상의 토양이 너무 척박하다는 의미, 인재를 키워주고 이끌어줄 만한 도량을 지닌 인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도량(度量)’이라는 말을 중시하고 그것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매우 낯선 말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어른이기를 포기하고 학자가 학자답게 살지 못하고 지도층이 지도층이기를 포기하니 도량보다는 소인배의 얄팍한 처세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갓끈을 끊는 마음으로 넉넉한 도량을 회복하고 너그럽게 세상을 품어야겠습니다.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세상,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세상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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