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원짜리 장비로 GPS 교란실험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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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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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리모컨키 수준 전파로… 2km내 모든 GPS 무력화 가능

지난달 26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팀이 영동고속도로 이천 요금소를 빠져나와 농경지역을 30분 정도 지나자 방송통신위원회 이천분소 전자파시험관이 나왔다.

전자파시험관은 TV,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기기가 안전한지 등을 시험하는 곳이다. 실험 중에 주변의 산업체나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외진 곳에 있다. 취재팀은 자칫 큰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성위치확신시스템(GPS) 교란 장치(Jammer·재머)의 위해성 유무를 실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전자파시험관에 도착하자 신영진 방통위 전파연구소 품질인증과 주무관이 “실험 준비를 해놨다”며 ‘무반사실’로 안내했다. 무반사실은 흑연 성분으로 만든 올록볼록한 계란판 모양의 차폐제로 이뤄진 공간으로 전파가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이곳에서 신 주무관과 함께 서울 용산의 한 전자상가에서 입수한 불법 GPS 교란 장치를 전원에 연결하고 실험에 들어갔다.

○ 재머로 GPS 무력화 성공


“GPS 교란 장치의 신호가 잡혔습니다.”

GPS 교란 장치를 설치한 지 채 1분이 되지 않았는데 신 주무관은 교란 전파가 잡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도 통제실 모니터에서 ‘지그재그’ 모양의 교란 신호를 확인했다. 내비게이션 등 GPS 이용 장치들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을 충분히 덮을 정도로 강했다. 신 주무관은 “(취재팀이) 입수한 GPS 교란 장치의 출력이 10mW(밀리와트·1mW는 1000분의 1W)로 생각보다 강하다”면서 “이 정도면 1∼2km 반경에 있는 GPS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험을 위해 입수한 GPS 교란 장치는 불과 성인 손가락 두 개를 합한 정도의 크기지만 파괴력은 생각보다 컸다. 본보가 실험한 교란 장치의 출력 10mW는 차량용 리모컨의 출력 크기다.

취재팀과 방통위는 원래 GPS 교란 장치의 성능을 확인한 뒤 야외에서 GPS 장치 교란 실험을 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까봐 진행하지 못했다. 신 주무관은 “GPS 교란 장치의 출력이 1mW가 넘으면 인근 지역에 있는 이동전화 기지국이나 군부대 장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야외 테스트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위성 신호를 받기 위해 무반사실 문 밖 30cm 근처에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설치했다. GPS 교란 장치에서는 4m가량 떨어진 거리다. 무반사실 밖에서 9개의 GPS 신호를 찾아냈던 내비게이션은 GPS 교란 장치를 켜자 모든 신호를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작동 불능 상태가 돼버렸다.

○ 용산, 인터넷에서 교란 장치 손쉽게 구입


GPS 교란 장치를 제조해 판매하면 전파법 58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취재팀은 서울 용산의 한 전자상가에서 30분 만에 실험에 사용한 장치를 25만 원에 살 수 있었다. 전자상가에서는 취재진이 입수한 것보다 출력이 200배 높은 2W급의 교란 장치도 판매하고 있었다. 박준구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2W 교란 장치는 최대 50km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유사한 장비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유명 쇼핑몰에서도 팔고 있다. 중국에 위치한 제조업체에 구매의사 e메일을 보내자 “한국으로 5일 안에 배송이 가능하다”는 답신이 왔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제품의 가격은 5만∼30만 원이었으며 출력은 0.5W에서 2.7W까지 다양했다.

교란 장치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GPS 교란 장치의 설계도는 전자공학 전공 학부생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상정 충남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 찾은 설계도에 있는 부품은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학부생한테 과제로 내주면 하루 만에 만들어 올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 항법 금융 통신 등 장애 일으킬 수도


GPS는 차량 항공 선박 등의 항법 장치에 널리 사용된다. GPS 위성에는 매우 정확한 시간 측정 장치인 ‘세슘 원자시계’가 있어 초단위 거래가 이뤄지는 금융 거래 등에도 활용된다. 이 외에도 휴대전화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서 GPS 장치를 활용하고 있어 만일 GPS 전파가 교란된다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이 올 수 있다. 이상정 교수는 “GPS 교란 장치는 GPS의 오차를 늘리거나 GPS를 동작 불능 상태로 만들어 비행기 착륙이나 선박 항해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망이나 금융 전산망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상욱 위성항법연구팀장은 “이동통신 기지국, 금융거래 신호 처리,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 등은 GPS를 이용해 신호를 일치시킨다”며 “전파가 교란되면 이 같은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천=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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