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대학 배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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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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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지만 진짜 입시레이스는 지금부터다. 지원 대학을 선택할 때 합격 가능성 말고도 수험생이 원하는 진로, 적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입시과정은 난해한 고차 방정식을 푸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형방식도 대학마다 다르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때 수험생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자료가 대입학원들이 내놓는 대학 배치표다. 배치표는 대학들이 지난 입시의 성적 자료 같은 입시정보 공개를 꺼리는 상황에서 수험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진학정보다.

▷그러나 이들 배치표는 내용이 제각각이어서 보면 볼수록 헷갈린다. 그 첫째 이유는 배치표가 대학들의 상이한 전형방식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배치표가 해당 학원에 다니는 수험생들의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는 한계 탓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예상 합격선이 최고 40점(800점 만점)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배치표의 이런 왜곡을 바로잡고자 2007년 학과별 수능시험 합격 커트라인과 평균점수, 고교별 합격생 수를 공개하기도 했다.

▷공교육에서 이뤄져야 할 진학지도가 학원에 맡겨졌다는 게 근본적 문제다. 대학들이 합격 예상점수를 높여달라고 학원에 로비를 할 정도로 배치표는 ‘권력화’했다. 교사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 탓에 수험생들은 사교육 업체에 비싼 돈을 내고 입시컨설팅을 받는다. 진학지도를 위한 실력도, 믿음도 없는 우리 공교육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학원 강사를 초청해 교내에서 입시설명회를 개최하는 고등학교는 그나마 친절한 편이다.

▷고교 3학년 진학담당 교사 7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전국진학지도협의회가 “일선 학교의 입시 데이터를 취합해 ‘대입 가이드’를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금주에 일선 학교에 배포될 ‘대입 가이드’는 점수대별 지원가능 대학이 나와 있는 학원들의 배치표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해 대입에 응시한 학생들의 합격 불합격 관련 정보와 함께 올해 수능시험의 가채점 결과 등이 실려 있다. 실제 학교현장에서 수집된 고3 제자들의 성적과 과거 합격생 정보는 학원이 갖지 못한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당연히 학교와 교사들이 할 일이지만 ‘공교육의 작은 희망’ 같아서 반갑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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