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원]서울 지하철 노조에 박수를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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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봉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보니 예년보다는 못하다고 하나 형형색색의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높은 가을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산은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는 자연이 웅장해서라기보다는 자연과 자연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서 삼천리 금수강산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은 자연의 이런 모습처럼 조화, 즉 남과 더불어 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선조의 사상에서도 사람 간의 조화를 강조했다. 며칠 전 한국노동교육원이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한국 경제가 선진국을 지향하는 데 양극화 해소와 더불어 노사 간의 협력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타났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기술이나 자본 못지않게 사람 간의 관계가 개선돼야 함을 시사한다.

사람 간의 관계를 규정할 때 한국인에게 독특한 요인 중 하나가 ‘정(情)’이다. 정은 어려움을 같이할 경우 잘 생긴다고 한다. 함께 고생할 때, 즐거움과 어려움을 같이할 때 정이 진해진다.

노사 간의 협력이 말로는 쉽지만 진정한 협력은 사람 간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회사나 국가가 경제적으로 도약하려면 구성원 간의 갈등 요소를 줄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사람 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구성원의 노력이 결집되면 경제적 성취가 이어진다. 일류 국가,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사람 간의 관계가 경영이라는 힘을 빌려서 정상화돼야 한다. 종업원의 경영참여, 산업민주화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서울지하철이 바뀌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강성이던 서울지하철 노조가 다음 달 15일 총파업에 참여하라는 민주노총의 지침에 대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면서까지 참여하기는 어렵다”며 거부했다.

정연수 노조위원장은 “관성적인 투쟁 방침에 따라 사용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노동운동 방식은 소수 노조 간부들을 위한 노동운동이며… 노조원의 실질적인 권익행사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노조의 변화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의 결정에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만도 없는 현실을 염려하게 된다. 많은 사업체가 무분규 선언을 했고 파업을 하지 않았지만 국내의 전반적인 노사관계는 아직도 전망이 밝지 않아서이다.

노동교육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사관계를 안정적이라고 보는 사람은 9.1%인 반면 불안정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48.6%, 매우 불안정하다가 10.4%이다. 3분의 2가량이 노사관계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노조가 양보하거나 협조적 노사관계를 선언하면 매스컴에는 환영 일변도의 기사가 실린다. 그러나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의 말을 음미해 보면 노조원의 권익 향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때 파업의 위험을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일에는 항상 수순이 있다. 서울지하철이 잠실에서 노사 한마당 축제를 성황리에 연다고 해서 노사분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분규를 자제한 측의 어려움과 이들의 노고가 진정한 산업평화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잠실에서 노사가 한마음이 돼서 즐겁게 지내듯이 일터에서도 종업원이 경영에 참여해 자신의 몫을 스스로 결정하며 회사와 한마음으로 기쁨을 나눌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아무리 험해도 그 길을 택하지 않으면 산 정상에서 가을 단풍을 만끽할 수 없음을 산과 산행이 보여 준다. 축제를 넘어 노사 간의 ‘정’을 어떻게 승화시킬지는 초일류기업을 추구하는 한국의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과제다.

김재원 한양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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