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26년, 한국사회를 생각한다]정범모-최정호 대담

  • 입력 2006년 5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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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왼쪽)와 최정호 본보 객원대기자가 한국사회 이념 갈등의 원인과 처방, 진정한 교육의 의미,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철민 기자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왼쪽)와 최정호 본보 객원대기자가 한국사회 이념 갈등의 원인과 처방, 진정한 교육의 의미,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안철민 기자
《한국 사회를 흔드는 이념적 혼란의 본질과 처방은 무엇일까, 참된 지식인의 역할은 어떻게 재정립되어야 하는가,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을 우리는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5·18민주화운동 26주년을 맞아 원로 지식인인 정범모(鄭範謨·81) 한림대 석좌교수와 최정호(崔禎鎬·73) 본보 객원대기자가 우리 사회의 고민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전제를 무시한 채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 양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다원주의라는 그릇을 깨려는 시도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지식인의 본질은 독립적인 사고와 자유로운 정신이며, 권력의 손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학과 지식인운동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중견 지식인인 전상인 서울대 교수와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주간의 대담(본보 17일자 A3면 참조)에 이어 16일 오후 동아일보사 20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두 원로의 대담을 요약해 소개한다.》

▽최정호 대기자=우리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보면 1980년 이후 새로운 현상입니다. 1979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무너지고 '서울의 봄'이라는 권력의 공위(空位)시대가 시작되면서 정치적 자유도 커졌죠. 하지만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광주에서 국민을 대량 학살한,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더 극악한 국가권력을 행사하자 반(反)권력 반(反)권위주의 의식과 움직임이 사회 저변에 확대됐습니다. 5공화국이 저지른 가장 큰 죄 중 하나는 학살극을 벌여 양심적 지식인이 국가 허무주의에 빠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남한 국가권력이 북한과 뭐가 다른가 하는 시각을 갖게 했죠. 그 같은 권력의 공위, 정신적 무정부상태에서 순수한 반 권력 운동에 편승해 친북좌파세력도 득세하게 됐습니다. 대학에 오래 몸담았지만 반미친북구호는 80년 5월 이전엔 없었던 것입니다.

▽정범모 교수=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은 반북과 친북의 관계와 같은 의미로 들립니다. 일반적 의의 보수-진보와 한국의 보수-진보 개념은 차이가 많습니다. 보통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입장이 보수, 민주 즉 평등을 강조하는 입장이 진보라고 분류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보수는 반공 반북, 진보는 친북 친공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도 진보, 보수파가 있지만 거기에선 자유민주주의를 대 전제로 삼고 보수와 진보를 나누고 있죠. 한국에서는 남북 분단 상황의 영향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왜곡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최= 그렇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체제를 따르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면, 진보는 가장 반동적인 개념입니다. 북한처럼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고, 세습 후계자를 내는 사회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특이한 점은 1990년 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후 외부에서 탈(脫)냉전, 탈(脫)이념의 시대가 열린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거꾸로 이념의 시대가 열려 실체 없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소위 진보세력은 북한체제가 건재하다면서 동유럽 혁명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소련 및 동유럽권이 총체적으로 붕괴함으로서 탈 냉전시대가 열린 것인데도 소위 진보세력은 이를 민주주의와 소비에트 주의의 화해처럼 받아들이며 낡은 이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좌익과 우익은 모두 허용되어야죠. 그러나 김씨 일가의 세습독재를 믿는 좌익, 80년 광주대학살을 지지하고 신군부의 향수에 젖는 우익은 안됩니다.

▽정= 자유민주주의는 유일한 것만을 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고 어울려 사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이념입니다. 그러나 다원성을 허용하는 그릇 자체는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릇이 깨지면 다 깨지니까요.

▽최= 근대국가는 종교 세계관 이데올로기에서 중립을 지킵니다. 모든 종교와 세계관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다원주의가 근대 국가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이 다원주의 테두리조차도 무너뜨리려 하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1980년 이후 기존에 터부시됐던 소리와 이념이 터져 나온 것이 장기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선 하나만 옳고 다른 건 아니라고 하는 유일체제 아닙니까. 이건 중세로의 후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만 옳다고 가르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전교조도 하나의 특정 이념을 의식화해서는 안됩니다.

▽정=그렇습니다. 교육은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전교조의 의식화 교육은 법적, 교육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학생이 양쪽 주장을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플라톤은 '한 사회가 존립하려면 사회 대다수가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가 존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인데 그걸 허물어서는 안됩니다. 지식인이 이념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지식탐구와 교육에 이데올로기를 개입시켜선 안됩니다.

▽최= 한국 교육에 대해 갖는 불만은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영방송에서 하는 '도전 골든 벨' 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하나의 정답만을 찾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학교장까지 나와 격려하는 것을 보면 민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나의 정답만 찾는 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합니다. 조선시대의 시험이 21세기 한국보다 훨씬 다양했습니다. 과거에서 詩題(시제)를 내면 저마다 개성적인 시를 썼죠. 교육도 다원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기 앞서 개방사회의 큰 테두리 안에서 같이 담론하고, 길고 짧은 것은 시장에 내놓고 사상의 소비자들이 선택토록 해야 합니다.

▽정=노자가 말하기를 '지자불박 박자부지(知者不博 博者不知·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실제 아는게 없다)'라고 했습니다. '도전 골든벨'에 나오는 학생이나 퀴즈왕, 수석졸업생은 시험선수이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걸 외워서 퀴즈라고 푸는데 창의성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지능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고 창의력은 정답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죠.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도 정답을 찾는 것 대신 창의력과 자유로운 사고, 독립적인 정신입니다. 그러려면 사회의 거센 세력에 대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권과 밀착하면 어용, 떨어지면 반(反)사회가 되는 것이죠. 신문사나 정치인, 정부 모두가 지식인이 적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런 점에서 정부가 자꾸 학자들을 동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원회를 만들어 학자를 불러대는데 상당수 일은 정부 스스로 위원회를 짜서 안을 마련하는 게 실무를 모르는 학자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것보다 실용적이죠.

▽최=지식인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은 프랑스에서도 19세기 이후입니다. 지식인에 대해 제대로 된 명확한 정의도 없는 상태인데 이럴 땐 우리의 전통에 기대야 합니다. 조선시대 선비의 전통과 기능을 바탕에 깔고 현대 지식인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지식인을 이성적, 비판적, 창의적 지식인 등 세 카테고리로 분류합니다.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는 동서양이 다릅니다. 서양에선 권력과 지식인과의 관계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반면 학자 정치를 폈던 조선에선 학문한다는 것이 출세해서 나라에 봉사한다는 의미와 같았고 지식과 권력은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비판적 지식인은 대간(臺諫) 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이 무서워 함부로 옳은 소리를 못하니까 국록을 먹고 임금에게 쓴 소리를 하라고 제도화한 것이죠. 그러나 창의적 지식인은 되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당시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삼았던 조선조는 모든 이단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 왕조가 500년간 유지됐던 것은 비판적 지식인의 용기 있는 직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현대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은 무분별한 사회참여와는 다릅니다. 다원성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우선 대학에서 잘 가르치고 연구하면 그게 엄청난 사회참여 아니겠습니까. 단 지식인은 사회나 역사의 커다란 방향에 대한 시각을 갖고 그 시각에 비춰볼 때 사회가 이상하게 가고 있다면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2차대전 발발 훨씬 전에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탄을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이 지식인의 바람직한 사회참여의 한 예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돈벌이도 되고 팔려서 하는 사회참여는 하나도 미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인이 권력의 손발 노릇을 해선 안됩니다.

▽최= 조선시대의 제도에서 우리가 근대적 관점에서 재고해야 되는 것이 학자-정치라는 사회전통입니다. 그 당시에는 벼슬과 학문이 일치한다는 관념 때문에 학문이 높을수록 벼슬이 높았습니다. 그런 흐름이 이어진 탓인지 오늘날에도 대학교수들이 학문 그 자체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곁눈질을 하고 있습니다.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온 사람에게도 계속 김총리, 이장관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 그 같은 관학관(官學觀)의 원류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바퀴 화약 종이 등을 발명한 문화의 영도자였지만 진시황과 한무제가 제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과거제를 실시하면서 제자백가와 같은 다양한 교육이 사라졌죠.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은 관에 봉사하는 공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출세를 위한 '간판'관, 쓸모를 중시하는 '유용'관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지식은 처음엔 쓸모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하다가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원자탄도, 페니실린도 모두 호기심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지식의 '희열'관입니다. 기쁨 때문에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죠. 확정된 절대적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지식인의 태도는 아닙니다.

▽최= 대수와 기하를 제외하고 세상에 하나의 정답이란 없습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그리고 법전의 논쟁에서도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정답만 서둘러 찾고 왜 그게 정답인지 설명하는 말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필수적 자질은 자기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 능력입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같은 새 매체 등장 이후 언어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표현이 감각화하는 것도 문제입니다.신문의 1면 제목도 대중에 영합해 감각화해가고 있습니다. 언어 상실의 시대에 신문 스스로 자기의 묘혈을 파는 꼴입니다. 이 역시 지식인이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라 할 것입니다.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정범모 교수

△1925년 서울 출생 △1949년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1962∼64년 미국 시카고대 박사(철학) △1952∼78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 학장 △1974∼현재 한국행동과학연구소 회장 △1978∼81년 충북대 총장 △1982∼92년 한림대 교수 △1992∼96년 한림대 총장 △1996년∼현재 한림대 석좌교수 △주요 저서 ‘인간의 자아실현’ ‘한국의 교육세력’ ‘학문의 조건-한국에서 학문이 가능한가’

○ 최정호 대기자

△1933년 전북 전주 출생 △1957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55∼72년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 편집위원 △1968년 서독 서베를린자유대 박사(철학) △1968∼76년 성균관대 교수 △1976∼98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977∼79년 한국신문학회 회장 △1999∼2005년 울산대 석좌교수 △2004년∼현재 동아일보 객원대기자, 한독포럼 한국 측 의장 △주요 저서 ‘세계의 공연예술기행’ ‘한국의 문화유산’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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