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부도직격탄 피해지역 르포

  • 입력 2000년 9월 8일 22시 58분


《추석 분위기가 썰렁하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천고마비, 청명해야 할 가을하늘이 잿빛처럼 느껴진다. 소원을 빌 둥근 보름달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특히 지난달 말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우방이 부도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구지역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있다. 부도사태와 관련된 협력업체는 1300여개, 관련 종사자만 1만3000여명. 한마디로 우방사태의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한국 제2의 도시’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 경제의 지표인 어음부도율은 0.2%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 그러나 “더 이상 부도날 기업이 없기 때문에 부도율이 낮다”는 아이러니는 부산을 포함한 우리 경제 전반의 ‘우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구의 재래시장인 서문시장 상인들은 8일 이구동성으로 “아이들 옷 이외에 팔리는 것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 상인은 “작년의 경우 1만원어치를 팔았다면 올해는 2000원 매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모씨(45)는 “아직 우방의 여파가 시장에까지 직접 나타나진 않았지만 추석이후 연쇄부도와 함께 경제위기가 몰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석연휴를 앞둔 8일 오후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 260여개의 의류점포를 비롯해 14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이곳도 ‘추석대목’은 실종됐다.

액세서리 가게를 기웃거리는 손님 외에는 썰렁한 모습. 이른 저녁 셔터를 내려버리는 가게도 적지 않다. 옷가게를 하는 김모씨(여). 몇 년 전만 해도 이때쯤이면 다른 사람의 어깨와 부딪히는 게 다반사였다며 “추석 경기예, 요즘 부산에 그런 것이 어디 있어예”라며 강한 사투리로 반문했다.

대표적 번화가인 광복동. 사람이 북적거리기는커녕 한산한 느낌이고 부산역 앞엔 빈 택시만 붐비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손님이 없어 아예 차밖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신세타령이다. 한 기사는 “경기가 좋을 때는 손님도 가려 태우고 합승도 했다. 요즘은 사납금을 벌기도 어렵다”고 푸념했다.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부산 사상공단에서 과거의 영화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을 닫은 공장이 많고 어쩌다 만난 근로자들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신발업체인 ㈜신세영화성 김동근(金東根)사장은 “최근에만도 비교적 잘 나가던 프로상사와 ㈜거금이 부도를 내는 등 잇따라 신발업체가 쓰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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