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패러독스 경영

  • 입력 1997년 7월 25일 20시 22분


우리는 보통 양면적이라는 말에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을 갖는다. 예로부터 심지가 굳고 일편단심으로 꼿꼿한 지조를 지켜온 사람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소신이나 신념이 자주 바뀌면 곤란하겠지만 양면성 자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 변화-안정 조화 이뤄 ▼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 중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신중하면서도 추진력이 있는 양면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등 저명한 과학자와 예술가들은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생각한 군자(君子)도 외유내강형의 양면적 인간이다. 어떤 연구결과를 보니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잘 조화된 양성적인 사람이 적응력도 높고 성취욕구도 크다고 한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우수기업이나 오래도록 장수(長壽)한 기업들은 상반되는 요소를 조화시키는 「패러독스 경영」에 강점을 갖고 있다. ABB라는 회사는 사원이 20만명이 넘는 큰 기업이지만 마치 중소기업처럼 움직인다. 인텔은 펜티엄 칩으로 큰 수익을 거두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MMX칩과 RISC칩을 개발했다. 반면에 50년대 반도체 분야의 선두기업이었던 RCA는 변화와 안정이라는 두가지 패러독스 요소를 조화시키지 못해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기업경영에서 상충되는 요소들은 사실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잘하는 경영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우수한 여성인력을 많이 뽑아놓아도 남성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상승효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획일적인 이분법 논리와 흑백논리가 판을 치는 우리 현실에서 양면적인 「패러독스 경영」을 잘 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 내가 94년 신경영을 주창하면서 질(質)경영을 수차례 강조하니까 앞으로 양(量)경영은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매출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양면성 살려야 더 큰힘 ▼ 기업경영에 있어서 질과 양, 매출과 이익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는 경영은 반대 차로를 보지 않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물론 양면적인 경영을 한다고 죽도 밥도 아닌 경영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앞으로 이와같이 상충되는 요소를 잘 조화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이류는 될 수 있어도 일류기업은 되기 어렵다. 세상 만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밀물이 지면 썰물이 온다. 세상의 근본원리는 상반되는 요소가 잘 어우러지면서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기업을 잘 경영하려면 자본이나 기술도 필요하지만 외견상 상충되는 경영요소를 슬기롭게 관리해 나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와같이 양면성을 이해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기업이 다가오는 21세기에도 계속 번영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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