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먼저 온 미래”[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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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해마다 무료로 어학연수를 간다. 입학하면 집도 주고 부모 일자리까지 알아봐 준다. 경남 함양군에 있는 전교생 14명의 서하초교 얘기다. 학생 수가 줄면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시골 학교의 적극적 자구 노력 사례다.

▷1000만 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도 학생 수가 모자라 문을 닫는 첫 공립 초등학교가 나왔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염강(鹽江)초교에서 10일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은 38명. ‘소금처럼 세상을 맛깔나게, 강물처럼 어떤 걸림돌에도 거침없이 큰 바다로 흘러가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세웠지만 ‘학생 절벽’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개교 26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학교 측은 졸업식에 ‘조금 먼저 온 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시 학교의 폐교는 저출산 고령화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어른들은 몰려들지만 학령인구는 줄고 있다. 2018년엔 서울 은평구의 은혜초교가 사립 초교로는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지방에선 폐교가 오래된 고민거리다. 전교생이 10명 남짓밖에 안 돼 축구 경기를 못하고, 한 학년에 학생이 달랑 2명이어서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번갈아 맡는 곳도 있다. 학생 부족으로 폐교된 학교는 초중고교 합쳐 3000개. 대부분 시골 학교다. 경남 진주 지수초교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구인회 LG그룹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을 배출한 명문이지만 2009년 문을 닫았다.

▷지금 추세면 10년 후엔 초등학교 6064곳 중 1791곳(29.5%)이 폐교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주민과 동문, 공무원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교는 입학생과 전학생에게 새 집을 빌려준다. 그 덕분에 2018년엔 유치원생까지 합쳐 26명이었던 전교생 수가 1년 만에 37명으로 늘었다. 전남 고흥 영주고는 중졸 학력의 60대 만학도들을 신입생으로 받아들여 폐교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2018년 빈 교실을 활용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땅값 비싼 서울에 어린이집을 지으려면 부지 매입에만 20억∼30억 원이 드는데 빈 교실을 리모델링하면 7억 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정부도 이에 호응해 2018년 2월 학교 안 어린이집 및 돌봄교실 설치 방안을 확정했지만 관련 법인 영유아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빈 교실에 든든한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으면 출산율이 높아지고 학생 수도 늘어날 것이다. 염강초교 폐교 소식이 마음 아프다면 국회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을 관련 법안부터 챙겨보길 바란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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