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핵심은 결국 국익이다[동아 시론/이희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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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쿠르드 ‘배신’은 국익 우선시한 결과
핵심 자산인 주한미군과는 비교 어려워
상호이익과 신뢰의 두 축, 공고히 해야
동맹탑, 어렵게 쌓아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쟁이었던 5년간의 참혹한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되는 듯하다. 미국이 마지막 위협세력이었던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마저 제거해 줌으로써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정권은 탄탄대로 기반을 다지게 됐다. 시리아 내전 실패를 계기로 미국은 서서히 중동에서 발을 빼면서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할 것이다. 이미 대규모 셰일가스 생산을 기반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 미국이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 것도 탈(脫)중동화의 주요 요인이다.

이제 시리아 내전 종식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또 다른 국익전쟁이 중동 전체의 역학구도를 뒤흔들게 될 것이다. ‘러시아-중국-이란’의 동맹 축에 대항해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협력구도를 이루고,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터키는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숨 가쁜 국익전쟁을 벌이고 있다.

금번 쿠르드 문제는 처음부터 예고된 재앙이었다. 앙숙관계인 터키와 쿠르드민병대(YPG)가 아사드 정권 타도라는 일시적 협력의 배를 탔기 때문이다. 터키는 여러 차례 미국에 시리아 쿠르드민병대에 대한 군사지원과 협력관계 중단을 요구했다. YPG를 통한 시리아 교두보 확보와 시리아 북동부 유전지대에 대한 이권을 포기할 수 없어 상황을 관망하는 미국에 실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러시아제 S-400 미사일 방공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양국 관계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터키가 이란, 러시아 등과 삼각편대를 형성해 미국을 위협하는 새로운 권력 지도를 그려가자,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YPG를 버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리아 쿠르드에 대한 의리와 동맹을 지키면서 얻을 수 있는 국익보다 터키라는 67년 나토 맹방을 버리고, 이스라엘 안보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국의 중동정책은 ‘배신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1948년 남의 땅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1953년에는 가장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미국은 2012년 아랍의 봄 이후 민주적으로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낸 이집트 군부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이란과의 핵 평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전쟁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중동의 뿌리 민심이 반미(反美)로 돌아선 배경이다.

미국이 쿠르드족을 버린 사태를 지켜보며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과연 동맹으로서의 미국을 계속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배신 행태를 한반도의 상황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일시적 협력 차원의 동맹을 더 큰 국익을 지키기 위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과 70년 가까운 한미 협력의 핵심 전략자산인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엄중한 동북아 현실에서 주한미군 철수 이후에 미국이 얻을 수 있는 대안적 국익이 부재하다는 의미이다.

현재 미국 대외전략의 핵심 축은 북한을 다루는 한반도 문제와 이란을 압박하는 중동정책이다. 통상 두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면서 이란과 시리아 문제에 집중하는 트럼프로서는 북한 문제에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가 중동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한반도에는 언제든지 다시 긴장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중동사태가 한반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적과 친구가 혼재되고 주변 강국들의 도발이 일상화되는 오늘 굳건한 대안적 안위전략을 확보하든지, 남북한 화해가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기존 동맹을 굳건히 지키든지, 우리의 갈 길은 분명해 보인다.

내전 종식 이후 시리아인들은 속속 고향으로 돌아와서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기나긴 슬픔과 회한의 시간을 이어갈 것이다. 200만 시리아 쿠르드 민족도 다시 주어진 작은 자치에 만족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긴 투쟁을 원점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동맹은 결국 상호이익과 상호신뢰라는 두 개의 축으로 존재한다. 오히려 지금은 두 축이 견고한지를 냉정하게 되돌아 볼 때다. 수십 년에 걸쳐 ‘동맹 탑’을 쌓는 일은 힘들어도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순간이다. 준엄한 역사의 법칙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중동학
#쿠르드족#트럼프#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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