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앞의 佛 시민들 “싫지만… 결국 가야할 길”[광화문에서/김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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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아빠, 오늘 무슨 일 있어?”

13일 아침. 평소보다 거리에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를 탄 사람이 3배는 많아 보이자 초등학생 딸이 등굣길에 불쑥 물었다. 이날 아침 프랑스 파리 시내 도로 곳곳이 꽉 막혔다. 원인은 지하철 노조 파업이었다.

파리 시내 16개 지하철 노선 중 10개가 운행을 중단했다. 버스나 트램 노조도 일부 파업에 동참하면서 자가용이나 택시, 우버 이용이 급증했고, 파리는 하루 종일 ‘교통지옥’에 시달렸다. 2007년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교통 종사자 파업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

지하철 노조가 파업에 나선 이유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 중인 ‘연금개혁’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각 직업에 맞춘 42개의 연금제도를 운영해 왔다. 예를 들어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종사자는 퇴직 연령(55.7세)이 빨라 연금도 다른 직종보다 빨리 받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연금 수령 시작 시기나 액수가 차이가 나지 않도록 연금제도를 단순화하려는 게 개혁안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자 과거보다 ‘더 내고 덜 받게’ 될 사람들이 반발했다. 16일엔 전국 곳곳의 재판이 미뤄졌다. ‘덜 받게 된’ 변호사들이 시내 곳곳에서 검은색 법복을 입고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벌였기 때문. 의사들도 같은 이유로 집회를 여는 등 여러 직업군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서울에서 출근길 지하철이 멈추고 대규모 시위가 열리면 어떻게 될까’란 상상을 했다. 해당 정책 추진이 중단되거나 각계 요구에 맞춰 예외조항들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된 과거 사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국민연금 개편안 마련 과정이 그러했다.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1∼13%로 올리고,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현행(65세)보다 상향하는 개편안을 마련했다. 재정 추계 결과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2057년으로, 당초보다 3년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부담이 커질 자녀 세대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누가 ‘더 내고 덜 받길’ 바라겠는가? 연금개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 반대 여론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동의 없는 연금 개편은 없다”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고, 이내 개혁 동력은 시들해졌다.

당시 국내 상황을 취재했던 기자는 ‘파리 교통대란’ 이후 만나는 프랑스인마다 연금개혁에 대해 물었다. 태반이 “불편했고 나 자신에게는 불이익이니 반대하는 쪽이지만,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나 반대 여론 모두 필연적”이라고 답했다. 대다수가 사회적 혼란을 부정하거나 원천 차단하기보다는 ‘가야 할 길’, ‘거쳐야 할 과정’으로 여기고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도 최근 장관과 각료들에게 연금개혁을 보다 강력히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혼란은 ‘과정’일 뿐 연금개혁이란 커다란 ‘결과’로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1.92명. 한국은 0.98명으로 그 절반 정도다. 여기에 우리는 인구의 20%가 노인인 ‘고령화’도 동시에 겪고 있다. 우리 사회도 연금개혁으로 발생되는 사회적 혼란을 거쳐야 할 ‘중간 다리’ 정도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부모 세대 부양 부담으로 허리가 휠 내 자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연금개혁#퇴직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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