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신고자에 그 표 줍니다” 역발상 단속 효과만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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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열린 잠실구장 가보니

30일 오후 7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30분 전 프로야구 기아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 시작됐지만 야구장 밖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일찌감치 예매에 성공해 입장한 사람과 현장 구입마저 실패한 사람의 희비가 엇갈렸다. ‘제발 두 자리 부탁합니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울상 짓는 사람이 곳곳에 있었다.

“표 구하세요? 좋은 자리 있는데….”

입장권을 예매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야구장으로 온 A 군(16)에게 송모 씨(60)가 말을 걸었다. 송 씨는 블루석 입장권 4장을 팔겠다고 했다. 장당 5만5000원이니 4장이면 22만 원이다. 송 씨는 이걸 100만 원에 팔겠다고 했다. A 군은 일행과 의논하겠다고 한 뒤 근처 ‘암표 방지 공익신고센터(공익신고센터)’로 향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송 씨를 적발했다. 송 씨는 부산 지역의 유명한 암표상이었다.

경찰은 암표상에게서 입장권을 압수했다. 입장권은 재발매 절차를 거친 뒤 신고자인 A 군에게 전달됐다. 잔뜩 긴장했던 A 군의 표정이 환해졌다. “신고하느라 늦었는데 서둘러 들어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암표를 팔던 송 씨는 울상이 됐다.


가을 야구 때마다 극성이던 잠실야구장 암표 판매가 올해는 신통찮다. 올해 처음 선보인 공익신고제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공익신고제는 올 4월 서울 송파경찰서가 전국 처음으로 시작했다. 시민들이 암표 거래 현장을 포착해 결정적 제보를 하면 해당 입장권을 신고자에게 최대 4장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신고포상금인 셈이다. 단, 암표상이 입장권 종류를 밝히고 웃돈을 달라는 모습을 영상이나 녹취로 남겨야 제보가 성립된다.

정규시즌 때는 공익신고제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매진 경기가 많지 않아서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시작과 함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잠실야구장 첫 한국시리즈(3차전)가 열린 28일 하루에만 공익신고 20건이 접수됐다.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때 접수된 공익신고(65건)의 3분의 1가량이 이날 하루에 이뤄졌다.

진짜 효과는 다음 날 나타났다. 4차전 경기가 열린 29일 공익신고는 6건에 그쳤다. 5차전 때는 13건이었다. 야구팬이 공익신고자로 나서자 암표상이 대거 판매를 포기한 것이다. 한 암표상은 “어제도 딱지(즉결심판)를 떼서 오늘 아주 비싸게 팔지 못하면 손에 남는 게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준석 송파서 생활질서계 경장은 “암표상들이 쉽게 거래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동안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 단속이 여의치 않았는데 시민들이 직접 신고하면서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대목을 놓친 암표상 중 일부는 공익신고센터 앞으로 몰려와 행패를 부렸다. 28일 낮에는 “왜 암표를 팔지 못하게 하느냐”며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던 윤모 씨(59)가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30일 윤 씨를 구속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암표#한국시리즈#신고#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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