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가 조사한 ‘위안부 자료집’, 일본군 개입 주요 사료 고의 누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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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조사하고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발간한 ‘종군 위안부 자료집’에 일본군이 위안소 설립과 운영에 개입했음을 의미하는 언급이 담긴 원본 사료가 고의로 누락됐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2년여의 노력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문서고에서 발견한 ‘위안부’ 관련 자료를 11일 공개했다. 일본군이 ‘위안부’와 위안소 운영에 개입했다는 사실, 각지에서 운영된 위안소의 규모와 운영 상황 등을 알려주는 사료다.

“전투지역에 있는 최전선 군인들에게 강간과 약탈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강간과 약탈을 전쟁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으로 여겼던 중국 주둔군인들 사이에서 이런 일은 아주 흔했다. 강간을 방지하기 위해 군(軍)은 점령 후 즉각 허가된 공용 위안소를 설립했지만 강간은 흔하게 계속되었기 때문에 많은 말레이시아 여성들은 머리를 짧게 깎거나 남자처럼 옷을 입었다.”

미군이 2차대전 당시 작성한 ‘동남아시아번역심문센터 심리전 시보(時報) 제182호’(시보 제182호) 16쪽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번에 국편이 공개한 사료 중 일부다. 특히 “…강간을 방지하기 위해 군(軍)은 점령 후 즉각 허가된 공용 위안소를 설립했지만…”이라는 포로의 진술은 일본군이 위안소 설립의 주체라는 걸 뒷받침하고 있다. 또 같은 사료 18쪽은 “몇 달간 여자를 보지 못했던 일부 군인들이 마을의 소녀들을 강간했다”라고 일본군의 성범죄를 증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이 펴낸 위안부 자료집인 ‘정부 조사 종군위안부 관계 자료집성(政府調査從軍慰安婦關係資料集成)’에는 이 같은 내용이 빠져 있다. 이 자료집이 ‘시보 제182호’ 전체 46쪽 중 달랑 4쪽(목차, 표지, 19·20쪽)만 담고 있는 탓이다. ‘일본군이 위안소 설립’ 등의 진술이 담긴 페이지는 누락됐다. 김득중 국편 편사연구관은 “확인 결과 해당 자료는 46쪽이 한 덩어리로 돼 있는데도 일본군의 개입이 언급된 핵심 부분이 자료집에 빠진 건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은 1995년 일본 민간단체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금’을 모금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금이 발간한 자료집은 지금까지도 위안부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는 주요 사료집이다.

이 자료집에 중요 진술을 담은 원본 사료가 고의로 누락됐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더 있다. 자료집은 원본 사료의 출처, 즉 일본이나 미국 등 자료 소장처의 상세 소장 정보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일본 방위성’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 와 같은 식으로만 기록해 연구자가 원본을 확인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고를 처음부터 다시 뒤져야 하는 것이다.

김득중 편사연구관은 “이처럼 원본을 확인하기 지극히 어려우면 학자들이 자료집에 포함된 사료에만 근거해 연구하는 방향으로 유도되기 쉽다”며 “헌데 이 자료집은 일부 사료를 번역하면서 일본군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술의 뉘앙스를 왜곡하고 있기까지 해 문제의 심각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이 자료집의 ‘포로심문보고서 94번 문서’는 “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the army did not run brothels, but…)”이라는 한 포로의 진술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이라고 원문에는 없는 ‘절대’라는 단어를 임의로 추가하기도 했다.

이날 국편이 공개한 또 다른 사료에는 일본군 위안소의 규모와 운영 상황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일본군 통신 감청과 포로 심문, 일본군 문서 번역 등의 임무를 담당했던 연합군 번역통역부(ATIS) 작성 일본군 심문 보고서 중 일부다.

그중 제91번 보고서는 파푸아뉴기니 라바울 지역에서 1943년 3월 11일 붙잡힌 일본군 하지메 나카지마에 대한 심문이 담겼다. 그는 “위안소가 군의 관리(army supervision) 하에 있다”고 진술했다. 제470번 보고서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부 말랑 지역에서 1944년 4월 29일에 체포된 일본군에 대한 심문보고서로 “군의 사법관할(jurisdiction) 내에 7개의 위안소가 설립됐고 조선인과 일본인, 인도네시아인 등 총 150여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국편은 지난해 미국과 영국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및 전쟁범죄 관련 사료 2만4000여 장과 단행본 439책, 마이크로필름 255릴을 수집했다. 이들 사료를 망라한 자료집을 올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간행해나갈 예정이다. 국편 관계자는 “기존 자료집의 문제를 바로잡은 정본 자료집이 간행되면 ‘위안부’ 연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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