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정책 흑역사] “하나만 낳자”에서 “셋이 행복하게”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2일 1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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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정책 흑역사 <2> 가족계획 표어로 본 시대상
● 피임상식 제로, 아들 낳을 때까지 ‘무한도전’
● 차범근 부부까지 나서 “하나만 더 낳고 그만 ”
● 180도 바뀐 정책…“아빠! 혼자는 싫어요”

대한가족계획협회 관계자들이 ‘무작정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자전거 앞에 걸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 관계자들이 ‘무작정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표어를 자전거 앞에 걸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 한다’.

1960년대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가족계획 구호 중 하나다. 도대체 얼마나 아이를 낳았기에 ‘거지꼴’이라는 극한 표현을 썼을까. 한 집에 아이가 5명이라면 지금은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당시엔 7~8명이 보통이었다.

이처럼 아이를 많이 낳은 가장 큰 이유는 남녀모두 피임상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도 피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농경 중심 사회에선 아이를 노동력으로 여기기 때문에 많이 낳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것. 열악한 위생상태와 영양실조 등으로 죽는 아이가 많았던 탓에 말 그대로 생기는 대로 낳았다.

끝순, 말순, 말자, 말숙

1973년 12월 주부클럽연합회가 광화문지하도에서 '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973년 12월 주부클럽연합회가 광화문지하도에서 '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남아선호사상까지 일조했다. 여성들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무한도전’에 나섰다. 그러다보니 딸만 7~8명인 집도 많았다. 그 시절 막내딸의 이름으로 많이 쓰인 끝순, 말순, 영순, 말자, 말숙 등에는 더 이상 아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로 운 좋게 아들을 얻는 경사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아들을 낳은 집은 대문 기둥에 금줄을 매달았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온 동네에 자랑하러 돌아다녔다. 딸을 낳으면 남편은 아이 얼굴도 보지 않고 동네 주막으로 달려가 술을 들이켰고, 시어머니는 갓 출산한 며느리 앞에서 손자타령을 해댔다.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들을 중시했다. 집안의 대를 잇고 조상을 모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집안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든가, 아니면 남편이 첩을 둬 아들을 낳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여성의 건강과 행복은 무시되고 오직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과 출산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였다. 불과 10여 년 전인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법조차 아들과 딸의 상속권리를 차별하고 남자가 가계를 승계한다는 전통의식을 인정했다.

1977년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주최한 가족계획 정책 발표 행사.
1977년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주최한 가족계획 정책 발표 행사.



핵가족화로 남아선호사상은 옛말


정부의 가족계획은 이 같은 왜곡된 사회의식과 구조를 바꾸기 위해시작됐다. 정부가 내세운 가족계획 표어나 포스터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1961년 가족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표어는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였다. 대책 없이 닥치는 대로 아이를 낳을 것이 아니라, 경제적 능력에 맞게 적당히 낳아 제대로 키우자는 것.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이어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 한다’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등 비슷한 취지의 표어들이 등장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습과 전통 등 국민의식 전환에 중점을 둔 것이다.

1966년에는 ‘세 자녀 갖기 운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정부는 세 자녀를 3살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자는 취지의 ‘3ㆍ3ㆍ35 원칙’을 올바른 가족계획 방법이라고 소개하면서 홍보영화까지 동원했다.

1970년대는 한 명이 더 줄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 정부는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가족계획을 실천하는 가정에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세 자녀 이하까지 세제혜택, 여성상속권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 두 자녀 불임수술가정에 공공주택입주 우선권 제공 등이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1960~70년 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

당시 독일에서 활약하던 축구선수 차범근 가족을 내세운 포스터도 등장했다. 차범근과 부인, 딸이 함께 나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어요’라면서 가족계획 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유명 스포츠 스타를 앞세운 이런 포스터는 어떤 강연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1980년대의 대표적 표어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고운 딸 하나 백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까지 등장했다. 대가족 중심에서 소가족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남아선호사상이 급감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인구가 국력’ 출산권장 국가 과제로



20세기에서 21세기로, 시대가 바뀌면서 인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구를 줄일 게 아니라 늘려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니 산아정책도, 구호도 정반대로 바뀌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이 행복합니다’ ‘하나의 촛불보단 여러 개의 촛불이 더 밝습니다’ 따위의 구호가 등장했다.

2000년대 등장한 출산장려 홍보 포스터
2000년대 등장한 출산장려 홍보 포스터

엊그제까지 정부를 대신해 정관수술을 권장하던 필자에게 어느 순간 저출산대책을 위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가 아직도 생생한 데 말이다. 요즘 필자의 병원에 정관수술을 상담하러오는 남성이 있으면 반드시 자녀가 몇 명인지 물어본다. 만약 자녀가 한 명이라면 부인과 한 번 더 상의하고 오라며 돌려보낸다. ‘하나는 너무 외롭지 않느냐’고 이야기면서.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

#magazine d#산아정책 흑역사#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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