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레지스탕스’를 보는 두가지 시각… 저항의 상징인가 기억의 조작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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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프랑스 과거사/이용우 지음/520쪽·2만9500원·푸른역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간부였던 르네 아르디(왼쪽 사진)는 장 물랭(오른쪽) 등 레지스탕스 수뇌부 모임을 나치 게슈타포에 밀고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1947년 1월 프랑스 법정에 섰다. 푸른역사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간부였던 르네 아르디(왼쪽 사진)는 장 물랭(오른쪽) 등 레지스탕스 수뇌부 모임을 나치 게슈타포에 밀고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1947년 1월 프랑스 법정에 섰다. 푸른역사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한국은 모두 제국주의 점령지 신세였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 한국은 독립투사들이 각각 침략자와 맞서 싸웠지만, 종전 이후 역사는 천양지차였다. 한국은 승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열강에 의해 분할됐지만,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내세워 당당히 승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빛나는 역사를 토대로 전후 드골 정부는 나치 협력자 800여 명을 처형하고 4만 명을 징역형에 처한 과거사 청산에 나설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바라보는 통상적인 역사적 시각이다. 그런데 이 책은 레지스탕스 역사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우선 전 국민의 저항운동이었다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조직 규모가 나치 협력자 수와 엇비슷한 30만∼50만 명에 그쳤다. 노선이나 운영방식도 일치되지 못하고 상당 기간 분열돼 있었던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레지스탕스의 분열상은 비시 정부 수반이던 필리프 페탱(1856∼1951)에 대한 시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점령 초기 상당수 레지스탕스 세력들은 비시 정부나 페탱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민족해방 조직을 이끈 앙리 프르네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페탱을 찬미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치와 비시 정부의 탄압이 노골화된 이후에는 페탱을 비난했지만 초기의 오판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종일관 페탱과 비시 정부를 비판한 프랑스 공산당 역시 떳떳한 기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괴뢰정부보다 더 거악(巨惡)이랄 수 있는 나치에 대해 잠시나마 모호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레지스탕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르네 아르디 재판. 노조 간부 출신으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아르디는 독일 게슈타포에 레지스탕스 수뇌부를 넘겼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저자는 숱한 유죄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죄로 풀려난 원인을 시대의 변화에서 찾는다.

“바뀐 시대, 조국에 대한 배반 여부가 더이상 뜨거운 열정과 분노를 야기하지 않고 단죄와 응징보다 화합과 용서가, 기억보다 망각이 촉구된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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