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나영석 PD “편집 전 촬영분 보면 욕 나와, 이서진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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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삼시세끼’ 나영석 PD. 스포츠동아 DB
tvN ‘삼시세끼’ 나영석 PD. 스포츠동아 DB
"이 프로는 망했어!"

tvN '삼시세끼' 첫 회에서 이서진은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출연진도, '복불복 게임'도 없는 밋밋한 예능 프로를 찍다 터진 걱정 섞인 불만이다. 삼시세끼에서 이서진과 그룹 2PM의 택연은 강원 정선의 두메산골 시골집에서 하루에 세 끼를 직접 해 먹는다. 이 밋밋한 콘셉트의 예능 프로는 6주가 지난 지금 8%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1박 2일',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린 나영석 PD를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 센터에서 만났다.

-첫 촬영부터 '망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처음엔 이서진 씨도 제작진도 '망한 것 같다'고 의견일치를 봤다. 집에서 밥 해먹는 것만 찍으니까 그림도 단조롭고, 출연진도 2명뿐이고…. 위험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느리게 흘러가는, 정적이면서 깊이가 있는 예능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원래 새로운 걸 하려면 위험요소를 안고 가야 한다. 위험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뻔하다는 얘기니까."

-이 '위험한 기획'은 어떻게 나온 건가.

"원래 저나 함께 프로를 하는 이우정 작가나 시골을 무척 좋아한다. 늘 여행 다음엔 농촌이라고 생각했다. 처마 밑에 빗물이 떨어지는데 툇마루에 누워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파전을 굽는 것. 일에 지칠 때면 늘 떠올리는 그림이다. 그러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프로로 옮기는 거다. 마침 요즘 귀농이나 텃밭이 유행이기도 하고 슬슬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편집에 굉장히 공을 들인다. 얼마나 걸리나.

"삼시세끼는 '편집 집약적'인 프로다. 열흘에 한번 2박 3일 동안 촬영하고 편집은 촬영이 없는 날 계속 한다. 처음에 편집 전 파일 보면 말 그대로 욕 나온다.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그림의 연속이다. 그걸 계속 돌려보며 일정한 패턴, 이야기를 찾는다."

-'꽃보다' 시리즈에서는 헬리캠을 사용했는데 '삼시세끼'는 초고속 촬영이 많다.

"'꽃보다'시리즈가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로 훑고 지나간다면 삼시세끼는 깊이 있게,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으로 디테일을 보여줘야 하는 프로다. 벌이 날아가는 모습이나 작물이 자라나는 모습처럼 천천히 가만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초고속 촬영을 했다."

-인기에는 출연진의 힘도 크다. 이서진과는 '꽃보다 할배' 때부터 연달아 함께 하고 있다.

"이서진 씨가 사실 '싸가지'는 없다. 그런데 어른들께 굉장히 공손하고 예의가 바르다. 연예인 중에 그런 사람 드물다. '꽃할배' 당시 출연진의 매니저들이 공통적으로 함께 해도 될만한 후배로 이서진 씨를 꼽았다."

-이서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 그게 화면에서 티가 나면 안 되는데…. 제작진 모두에게 고마운 출연자다. PD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피사체들이 본인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단계를 해쳐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멋있거나 예쁘거나 웃기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서진 씨는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하고 티를 낸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아주 좋다. 연예인이지만 일반인처럼 행동을 하니까."

-출연진 섭외 기준이 있나.

"'급'을 보고 선택하지 않는다. 연예인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대중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 안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택연 씨도 그런 편이다. 섭외 전에 조사를 했는데 평소에 옷을 못 입는 것으로 유명하고, 또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 가서 일반인들이랑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들 인터넷에 있더라. 일을 할 땐 회사 지시대로 하더라도 평소에는 나름대로의 자율성이 있는 친구라고 판단했다."

-출연자의 '캐릭터'를 살리는데 탁월하다. 이번엔 동물에게까지 캐릭터를 부여했다.

"자세히 보는 수밖에 없다. 요즘 예능은 대본 없이 먼저 찍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뽑아낸다. 누굴 관찰하는 게 일이다. 계속 하다보니 버릇이 됐다. 이제는 한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된다. 그러면서 사람을 궁금해 하는 일종의 직업병도 생겼다. 상대방 과거나 인생 이야기 듣는 걸 즐기고 질문도 계속 한다."

-나 PD 본인도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특히 주부 팬이 많다.

"식당 아주머니들이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해주시곤 한다. 그럴 때 제일 뿌듯하다. CJ E&M에 몸을 담고 있지만 KBS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내가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대중은 서민이라고 할만한, 40, 50대 가정주부나 아버지들이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지쳐서 TV를 트는 분들이 삼시세끼의 정서와 맞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삼시세끼는 시작부터 1년 하겠다고 했다. 정말 1년 가는 건가.

"1년 프로젝트라고 1년 내내 방송하는 건 아니고 가을편, 겨울편 식으로 4계절을 담겠다는 의미다. 원래 겨울에는 쉬려고 했는데 찍다 보니 겨울 나름의 감성이 있을 것 같아 짧게라도 찍으려고 한다. 농한기고 텃밭 식물이 다 얼게 되니 한계는 있겠지만 얼음 언 동치미를 꺼내 먹는다던가, 눈을 뚫고 계곡에서 뭘 길어온다던가 그런 그림은 가능할 것 같다."

-'꽃보다' 시리즈는 어떻게 되나.

"삼시세끼를 찍으면서 내년에 찍을 '꽃보다' 시리즈 기획회의를 함께하고 있다. 특히 꽃보다 할배는 제작진과 출연하는 선생님들 모두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선생님들이 싫어하시지 않는 한 1년에 한번씩은 여행을 떠나자는 거다. 시청자들에게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여행 다음에 농사를 선택했다. 다음 소재도 생각하고 있나.

"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주제는 늘 비슷할 거다. 어떤 PD든 자기만의 정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계속 가져가게 된다.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 보다는 시골의 한적한 느낌, 화려함보다는 털털함과 소박함, 그런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면 음식이든 농사든 뭐든 상관하지 않고 택할 거다."

-비슷한 정서를 계속해서 가져가는데 대한 두려움은 없나.

"두려움은 있다. 20대 때는 내가 청춘이고 내가 시청자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까. 인터넷도 남들보다 못하는 것 같고….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일이라는 건 팀과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못하는 걸 캐치할 수 있는 좋은 동료·후배와 일하면 된다. 혼자 다 할 생각만 접으면 방법은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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