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 주도의 AIIB 참여, 서두를 일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설립을 추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의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시 주석은 “건설과 기술, 자금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한국이 AIIB 창립 회원국으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구상은 시의적절한 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참여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기존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맞서는 기구인 AIIB를 내년 출범시킬 계획이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의 20여 개국이 참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AIIB 구상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낮추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고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도 AIIB 창설에 부정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선진국에 근접한 한국을 우군(友軍)으로 끌어들이는 데 관심이 높다. 중국은 한국의 참여가 AIIB의 위상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미국은 올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국의 AIIB 참여에 대해 간접적으로 우려를 전달했다. 이달 초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는 미국을 방문한 한국 고위 관료에게 반대의 뜻을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입김이 큰 국제통화기금(IMF)과 ADB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국을 돕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최악의 사태까지 간 다음에야 구제금융의 손길을 내밀었다. ADB와 AIIB의 동시 참여는 해외발(發) 경제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을 배제한 중국 주도의 AIIB에 한국이 ‘2중대’로 참여했다가는 미일 양국으로부터 한국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의 AIIB 참여 문제는 국제금융 질서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쟁탈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한중 관계의 진전은 중요하지만 핵심 동맹국과의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중국 주도의 아시아 신(新)경제 질서 구축에 동참할 것인지 득실을 면밀히 따진 뒤 결정해야 한다. 한중 정상회담의 분위기에 휩쓸려 섣불리 AIIB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면 자칫 큰 후유증을 낳을 위험이 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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