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구진, 체세포 복제방식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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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결함 발생 안해… ‘맞춤형 치료’에 성큼 다가서

황우석 박사팀이 실패한 기술, 美서 성공
미국 연구진이 사람의 피부세포를 난자에 넣어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해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은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세계적 생명과학저널 ‘셀’ 15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예전 황우석 박사팀이 시도한 방법과 비슷하지만, 학술지 차원에서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쳐 사실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여성 태아의 피부세포를 핵을 없앤 난자에 넣은 뒤, 전기 자극을 줬더니 수정란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5∼7일이 지나 세포가 150개 정도로 분열한 상태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 원래의 피부세포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둘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유전적 결함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진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체세포의 핵과 융합된 난자가 제대로 분열되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연구진은 분열을 돕기 위해 커피에 많이 들어 있는 카페인으로 세포를 처리했다.

울산과기대 김정범 나노생명화학공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킬 수 있으면서도 유전적 이상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안전성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환자 맞춤형 치료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모습. 왼쪽에 보이는 작은 유리관에 난자를 고정한 상태에서 레이저로 난자에 구멍을 낸 뒤 주사기같이 뾰족한 유리관을 찔러 넣어 천천히 핵을 빼낸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모습. 왼쪽에 보이는 작은 유리관에 난자를 고정한 상태에서 레이저로 난자에 구멍을 낸 뒤 주사기같이 뾰족한 유리관을 찔러 넣어 천천히 핵을 빼낸다.
○ 치료 목적에는 역시 배아줄기세포

한때 배아줄기세포는 난치병 환자에게 희소식으로 알려졌으나 황우석 박사팀의 논문 조작 사태 이후로 침체기를 겪었다. 그 사이 많은 연구자가 난자를 쓰지 않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주목했다. 성체줄기세포는 지방세포나 골수 등 인체 조직 곳곳에 있는 미분화 세포로, 배아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손상된 부위에 이식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2006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다 자란 피부세포를 배아 상태로 되돌려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만드는 데 성공해 줄기세포 연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더군다나 iPSc는 난자를 쓰지 않아 윤리적 문제가 없으면서도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 지난해 야마나카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줄기세포 연구의 흐름이 iPSc로 급격히 기울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iPSc는 줄기세포를 만들 때 사용하는 특정 유전자에 발암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는 것. 최근 일본 연구진은 발암 유전자 대신 다른 물질을 넣어 안전성을 확보해 올해 안에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어쨌든 iPSc는 세포 속에 다른 유전자를 임의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유전자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치료 목적으로만 따진다면 배아줄기세포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사진 윗부분에 배아줄기세포가 모여 있다. 연구팀은 체세포의 핵과 융합시킨 난자가 잘 분열하도록 커피에 많이 든 카페인을 넣어 성공률을 높였다. 셀(Cell) 제공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사진 윗부분에 배아줄기세포가 모여 있다. 연구팀은 체세포의 핵과 융합시킨 난자가 잘 분열하도록 커피에 많이 든 카페인을 넣어 성공률을 높였다. 셀(Cell) 제공
○ 엄격한 윤리 규정으로 美에 선수 빼앗겨

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해서는 수백 개가 넘는 난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긴 윤리적 논란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을 강화해 인공수정을 위해 채취한 난자 중에서 쓰고 남은 것을 제공자의 서면 동의를 거쳐야만 연구에 쓸 수 있게 했다. 이후 차의과대와 제주대 등을 중심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 이번 연구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도 건강한 난자를 쓸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한 상태다.

제주대 박세필 생명공학부 교수는 “생명윤리법 개정 이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건강한 세포를 쓰지 못하고 ‘냉동 난자’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커다란 한계”라고 설명했다.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면 난자를 찢어 핵을 빼내고 전기자극을 주며, 화학 물질로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냉동 난자는 이 과정을 버틸 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미 배아줄기세포 기술을 충분히 확보한 만큼 다른 나라 수준으로 윤리 규정을 완화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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