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퇴마록’ 이우혁, 8년 만의 '치우천왕기'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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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8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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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PC통신에 심심풀이로 소설을 올렸던 에어백 연구원 이우혁(45)은 이제 ‘퇴마록’으로 1000만부, ‘왜란종결자’로 100만 부(출판사 통계)를 넘긴 대형 작가가 됐다.

28일, 이우혁의 3번째 완결작 ‘치우천왕기’가 발간됐다. 1권이 나온지 무려 8년만이다.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작가의 얼굴은 밝았다.

“목에 걸린 가시를 뺀 것처럼 후련합니다. 잊지 않고 내면 된다, 그 생각만 했어요. 그간 독자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치우천왕기’는 9권까지 연재됐던 과거와는 다른 출판사에서 전체 6권으로 바뀌어 간행됐다. 만화는 간혹 출판사를 옮기는 경우가 있지만, 소설이 연재하다 말고 옮기는 건 드문 일이다.

이우혁은 “출판사와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성의”라며 자세한 답변을 피했다. 최근 소설가로는 보기 드물게 에이전트를 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덕분에 소설 쓰는 것에만 집중하게 됐어요. 전에는 책 하나 쓰면 쉴 생각만 했는데, 글밥을 20년 정도 먹으니 ‘다음 꺼 써야지’라는 생각 뿐이에요.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막 솟아나요.”

새로 발간된 ‘치우천왕기’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매 장 앞에 넣은 ‘시작 주(註)다. 1/3은 작가의 창작이고, 나머지는 동양 고전에서 발췌했다. 이우혁은 이를 쓰기 위해 전국시대의 공자 맹자 순자부터 육도삼략, 손자병법, 당(唐)시와 사기(史記), 산해경, 삼국유사 등을 원문으로 살폈다.

“단순히 한문을 우리말로 옮긴 게 아니라 4-4조라던지 7-5조라던지, 노랫가락을 살리고 댓구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내용도 ‘동양 고전에 든 삶의 지침’으로 내도 될 정도로 공들였죠.”



제대로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어렵다. 매년 TV사극들이 방영될 때마다 ‘역사 왜곡’ 논란이 벌어진다. 이우혁은 “그 시대의 선을 긋는 게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글자도 없고 금속도 없고 가죽 한 장씩 걸친 채 '와!'하고 싸웠다’ 이게 아니거든요. 부족전쟁이 일어나려면 법전도 있고 잉여생산물도 있고 기본 사회체제가 있어야돼요. 그렇다고 현대사회와는 다르죠. 돌로 된 무기는 자꾸 깨지니까 무예라는 게 없고 연습도 못하잖아요.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믿는 것도 단순히 멍청한 게 아니라 설명이 필요했고.”

이우혁은 ‘퇴마록’에서 ‘에스키모, 인디언, 마야의 선조는 고조선’, ‘4대 문명 중 하나인 수메르는 고조선의 제후국’ 등의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치우천왕기’에서는 대제국 고조선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국수주의나 쇼비니즘이라고 비난받는 일이 많았다.

“댄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 썼다고 카톨릭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치우천왕기’는 ‘규원사화’를 일부 참고하고, 대부분 상상입니다. ‘한단고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고조선 후손 이야기는 중국 학자 왕대유의 ‘용봉문화설’이라는 이론을 소설가로서 차용한 거구요. 그 사람 저서 한국어판 머리말에는 '그들이 동이족이고 당신들의 조상이며, 중국인이다'라고 되어 있어요. 이 뉘앙스가 정말 중요한 건데… 내가 조사한 자료들도 차후에 공개할 거예요. ”

이우혁은 올해 그간 쌓아뒀던 이야기들을 줄줄이 방출할 예정이다. ‘치우천왕기’의 뒤를 이어 ‘퇴마록 개정판’, ‘퇴마록 외전’, ‘푸가토리움’, ‘융세록’ 등이 준비 중이다.

이우혁은 “‘퇴마록 외전’은 팬들을 위한 선물이고, ‘푸가토리움’은 단테의 ‘신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죄’라는 심각한 주제를 클리셰(진부한 표현이나 설정)들을 활용해서 재미있게 표현한 책, ‘융세록’은 톨킨의 ‘실마릴리온’처럼 제 세계관 전체를 총정리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5월 16일부터 KBS2에서 방영되는 ‘부루와 숲속친구들’이라는 애니메이션도 이우혁이 깊게 참여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우혁에겐 아직도 ‘빚’이 남아있다. 99년 연재가 중단된 ‘파이로매니악’이다. 그는 “순서가 뒤로 밀렸을 뿐, ‘퇴마록’과 ‘왜란종결자’ 다 복간되고 나면 나올 것”이라며 “이미 글은 다 써놓았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내가 원래대로 공학해서 대기업 다녔으면 높이 올라가더라도 나중엔 다 잊혀지잖아요? 소설가는 좋은 직업이에요.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줄 글을 쓰니까.”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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