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복싱 역대 최고령 한국 챔피언탄생

  • 입력 2004년 11월 8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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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이룬 꿈 때문에 뒤늦게 다시 시작한 복싱이었어요. 챔피언이 되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프로복싱 역대 최고령 한국챔피언이 탄생했다. 올해 40세인 정경석씨. 정씨는 7일 대구 동구문화회관에서 열린 슈퍼라이트급 한국챔피언 결정전에서 16살 아래인 김용성에게 3-0 심판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뒀다. 지난달 동양챔피언에 오른 김정범이 한국타이틀을 반납하면서 랭킹 1위 정씨와 2위 김씨가 결정전을 벌인 것.

전북 전주가 고향인 정씨는 17세 때 무작정 상경해 챔피언의 꿈을 안고 복싱을 시작했다. 낮에는 중국 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샌드백을 두드렸다. 그러나 12남매의 장남인 그에겐 돈 안되는 복싱보다 동생들과 함께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고 결국 2년 만에 챔피언의 꿈을 접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을 모았습니다. 9년 전에는 경북 경산에 꽤 큰 중국 음식점을 냈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까 다시 복싱 생각이 나더라구요."

38세 때인 2002년 정씨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출전했다. 결과는 슈퍼라이트급 준우승. 자신을 얻은 그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 한국 랭킹 1위에 올랐고 올 1월에는 동양챔피언에 도전했으나 아깝게 판정패했다.

"동양타이틀을 놓친 뒤 은퇴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요. 어렵게 다시 시작한 복싱이니 끝을 보고 싶었습니다. 코를 많이 맞아 지난달에는 코뼈 교정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격렬하기로 정평이 난 복싱은 서른을 넘기면 대개 내리막길. 그런데도 정씨는 나이 마흔에 어떻게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그는 40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지옥훈련으로 양쪽 발바닥이 곪은 상태에서도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 나설 만큼 '독종'이다. 프로통산 7승(4KO)3패.

"챔피언이 되는 순간 가난한 시절에 복싱하며 서러웠던 일, 늦은 나이에 무슨 짓이냐는 주위사람들의 손가락질, 운동하면서 돈 버느라 겪은 고초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구요. 그래서 관중들 앞에서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어요. 챔피언의 꿈을 이뤘으니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1차 방어전을 치른 뒤 은퇴할 예정인 정씨는 "힘들었던 시절 가슴에 품었던 꿈이야 말로 내 인생의 원동력이었다"며 "복싱을 떠나더라도 항상 복서라는 생각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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