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선진 엘리트 교육의 현장<3>필립스 아카데미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6시 23분


코멘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라이벌이다. 설립자의 이름을 딴 앤도버의 새뮤얼 필립스 홀은 중앙캠퍼스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많은 교실이 있다(왼쪽). 하크니스 테이블 교육으로 유명한 엑시터의 화학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원형테이블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다. 앤도버(미 매사추세츠주) 엑시터(미 뉴햄프셔주)=김진경기자 kjk9@donga.com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라이벌이다. 설립자의 이름을 딴 앤도버의 새뮤얼 필립스 홀은 중앙캠퍼스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많은 교실이 있다(왼쪽). 하크니스 테이블 교육으로 유명한 엑시터의 화학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원형테이블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다. 앤도버(미 매사추세츠주) 엑시터(미 뉴햄프셔주)=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에듀케이션 하이웨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95번 도로를 타고 뉴욕에서 북쪽으로 가면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학들과 나란히 명문사립고들이 포진해 있다. 그 중에서도 매사추세츠주 북동쪽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와 바로 위 뉴햄프셔주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미국 최고 의 사립고 자리를 다툰다. 이 학교들의 교훈은 똑같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Non Sivi)이다. 나 자신이 아닌 (not for self) 지역사회와 국가 및 세계를 위해 일할 지도자들을 기르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마침 토요일인 8일엔 라이벌끼리의 스포츠 제전인 ‘엑시터-앤도버 게임’이 엑시터에서 열렸다. 두 학교 모두 이 행사를 앞두고 월초부터 술렁거렸다.#빅 블루-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 노벨상 수상자들 수시로 들른대요

:Andover: 하버드대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앤도버에 있는 이 학교는 하버드대를 많이 닮았다. 드넓은 캠퍼스 위에 애디슨 갤러리와 피버디 고고학박물관을 비롯해 160개의 건물이 흩어져 있다.

태나 셔먼 홍보부장은 “중앙도서관의 장서는 12만권, 애디슨 갤러리의 소장품은 1만2000점에 달한다”며 각 건물들을 안내했다. 그는 또 “시설도 시설이지만 세계적인 예술가가 와서 공연하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시로 들러 강연한다”고 자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업당 학생수가 평균 13명이어서 토론수업이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의 비율은 1 대 6 정도. 교사의 질도 높아 박사학위 소지자 36명에 석사 123명, 학사 49명이다. 단계별로 300개 코스가 개설돼 있어 학생들은 수준에 맞춰 수강할 수 있다. 학교측은 전세계에서 온 수재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범대 졸업 자격증이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지식이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인 유학생 김재익군(12학년)은 “교사는 24시간 질문에 응해준다. 더 이상 수준에 맞는 수업이 없으면 언제든 교사와 일대일 세미나를 할 수도 있다”며 “자랄 수 있는 만큼 키워주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도 이곳에서 배운 것이 밑바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데 언어와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할 예정. 페이퍼 작성과 시험공부에 각종 스포츠와 클럽활동까지 매달리느라 따로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 대비할 시간이 없지만 역시 짬을 내 공부해야한다고.

역시 한국인 유학생인 이진아양(12학년)은 민족사관고 1학년을 마치고 이곳으로 유학했다. 민사고에서 전교 3등을 할 정도로 뛰어났던 이양은 “의대를 가려했다면 한국에 있었을 것”이라며 “여기서는 다양하고 깊이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유학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앤도버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 부시 3부자가 다닌 학교다. 부시 전 대통령은 명예이사로서 각종 학교행사에 심심치 않게 참석하며 부시 대통령 역시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해 모교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잡지 ‘조지’의 발행인이었던 존 F 케네디 주니어 역시 이 학교를 졸업했다. 멀리는 저명한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 박사와 배우 잭 레몬, 미니멀 아트의 대표주자 프랭크 스텔라 역시 이 학교 졸업생이다.

제인 폴리 프리드 처장(입학 및 학교발전 담당)은 “이같이 엄청난 자원과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데 대단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 원탁토론 70년 전통…사고력 쑥쑥

:Exeter:이 학교에서는 똑같이 빅 게임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이 앤도버에서보다 많았다. 116개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잔디밭에서나, 첨단시설의 과학관 로비에서나 학생들은 틈만 나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제로 앤도버 학생들은 엑시터 학생들을 ‘공부벌레’라 부른다.

“이 학교의 독특한 하크니스 테이블 교육 때문이에요. 숙제를 해가지 않으면 토론에 낄 수 없어 금방 표시가 날 뿐 아니라 공부 자체가 되지 않아요.”

한국계인 김석영양(12학년)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우리말을 아주 잘하고 코리안소사이어티 회장으로 있는 김양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이 있고 그 중간중간 운동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숙제는 쉬는 시간이나 식당에서 아이들과 얘기하면서 조금씩 해야한다”고 말했다. 숙제시간은 5과목에 한시간씩 5시간을 넘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은 항상 모자란다. 기숙사에서는 오후 11시에 불이 꺼져 실제로 플래시를 비춰가며 공부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크니스 테이블 교육은 12명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토론식으로 공부하는 방법. 교사는 보조자나 조언자 역할에 머물고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와 논리 전개를 유도한다. 이 수업방법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의사표현 지적능력을 길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과목까지 이 방법이 동원된다. 1930년 자선사업가 에드워드 하크니스가 제안한 이 교육방법은 토론을 통해 서로 배운다는 이 학교 교육철학의 근간이 됐다.

한국계인 이공명군(9학년)은 집이 엑시터에 있는 데이학생(통학생). 공립 중학교에 다니다 진학했다. 고입수능시험(SSAT)은 99%를 맞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는데 중학교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공립학교에서는 질문이나 발표를 하려면 손을 들고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손을 들 필요가 없어요. 학생수도 적으니까 선생님과 친하게 지낼 수 있고 아무 때나 물어봐도 대답해 줘요.”

자그마치 14만권의 장서가 소장돼 있는 도서관은 이군이 자주 찾는 곳. 확실히 배우고 넘어가고 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 작년에 공립학교에서 1년 배운 것을 이곳에서 두 달에 다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서 역사를 싫어했던 이군은 ‘20세기를 어느 정도까지 선과 악의 싸움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 같은 흥미로운 숙제를 내주는 역사교사에게 흠뻑 빠졌다. 며칠간 오전 1시까지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세계 1, 2차대전에 관한 기록을 모두 조사했다. 지역사회 봉사클럽과 수학클럽 외에 토론클럽에 들어간 이군은 지난달 학교대표로 나가 토론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앤도버(미 매사추세츠주) 엑시터(미 뉴햄프셔주)=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앤도버는

1778년 판사 새뮤얼 필립스가 세운 남학교로 거버너 더머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딩스쿨이다. 1973년 여학교 애봇 아카데미와 합쳐 남녀공학이 됐다. 학생수는 1087명. 올해 하버드대 15명, 브라운대 14명, 예일대 9명 등 전체 266명 중 69명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 학비는 기숙학생이 연 3만100달러, 통학생이 2만3400달러. www.andover.edu

●엑시터는

1781년 새뮤얼 필립스의 백부인 존 필립스에 의해 세워졌다. 1970년부터 남녀공학이 됐다. 남학생은 셔츠에 타이나 터틀넥, 여학생은 치마 혹은 단정한 바지라는 드레스 코드를 유지하고 있다. 학생수는 1015명. 2000∼2003년 졸업생이 가장 많이 진학한 대학은 예일대 펜실베이니아대 브라운대 등 아이비리그였다. 학비는 기숙학생이 연 3만달러, 통학생이 2만2800달러. www.exeter.edu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