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전원일기’ 종영 앞둔 주요 출연진 "박수칠 때 떠나자"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8시 20분


최불암 김혜자 정애란 고두심(왼쪽부터)
최불암 김혜자 정애란 고두심(왼쪽부터)

“‘전원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농사짓는 드라마이지요.” (최불암)

MBC 드라마 ‘전원일기’가 22년 만에 종영된다는 소식에도 스튜디오 촬영장에 모인 출연진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마치 일상을 시작하듯 분장실 분위기는 차분했다.

먼저 ‘김 회장’ 최불암에게 종영의 소회를 물었다.

그는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온 ‘전원일기’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고 말했다. 산업 사회의 도시 노동자 중에 농부의 아들이 아닌 사람이 없듯이, ‘전원일기’는 도시인들이 목말라하는 마음의 고향이었다는 것. ‘전원일기’는 해외 교민들에게도 한국의 하늘과 들, 꽃, 무엇보다 그리운 부모와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삶의 오아시스였다.

그는 또 ‘아버지가 작아진 이 시대’에 ‘전원일기’는 가부장의 전통을 간직한 마지막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가장이 할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자식들과 손자 등 4대가 함께 화합하는 모습은 우리네 가족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에는 ‘아버지의 축’이 없어요. 아버지는 ‘병풍’처럼 배경으로만 서 있을 뿐입니다. 젊은이들의 주변만 맴돌지요. 삶의 물길을 잡아주는 어른은 없고 그저 철부지 어른만 나오지요. 자연에도 고목이 있어야 초목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는 95년쯤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던 친구가 미국인 며느리를 데리고 촬영장을 찾았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세트장에 올라선 벽안의 며느리가 최불암 김혜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술과 안주까지 준비한 뒤 “한잔 올리겠습니다”고 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 ‘전원일기’를 계속 봤더니 며느리가 한국식 예법을 배웠다”고 귀뜸했다.

출연진은 ‘전원일기’가 폐지 위기에 몰린 것은 가족 4대가 보여주는 휴머니즘과 감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혜자는 “전원일기는 인간의 심성을 다루는 드라마인데, 요즘엔 사건의 나열로만 이뤄져 다른 드라마와 차별성이 없어졌다”며 “아쉽지만 끝날 때가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최불암은 초반 10년간 ‘전원일기’를 이끌어온 김정수 작가가 떠난 뒤 그 전통을 제대로 이어가려는 참신한 기획이 부족하다며 일침을 놓았다.

며느리(고두심)도 “좋은 사람들과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없듯이 ‘전원일기’의 종영은 내 삶의 ‘이별연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원일기 첫회의 제목은 ‘박수칠 때 떠나라’였다. 당시 최불암은 마흔살에 65세의 김회장역을 맡았다. 첫회는 아직 기운 있을 때 농사일을 그만두고 떠나야한다며 자식인 유인촌에게 농사일을 물려주는 ‘농사 은퇴식’을 하는 것이었다.

‘전원일기’가 종영된다면 어떻게 끝내야하는지 출연진들에게 물었는데 각기 대답이 달랐다.

최불암은 “연말이나 명절 등 1년에 두어번 90분짜리 특집 드라마로 전원일기를 계속 방송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극중에서 100세 가까이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할머니(정애란·75)는 “100세 생일잔치를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깨끗하고 구김살없게 할머니가 자식들의 곁을 떠나가는 장면으로 전원일기를 마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혜자는 “할머니, 그러면 전국의 또래 할머니들이 너무 가슴아파해서 안돼”하며 만류했다.

일부에선 종영을 만류하는 여론도 일고 있으나 출연진의 의견은 첫회의 제목처럼 ‘박수칠 때 떠나자’는 쪽이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