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카드 운영 1년만에 파행… 소매상 사용기피

  • 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24분



국세청이 유흥업소 등 주류 소매업체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작년 7월 도입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가 시행 1년 만에 파행 운영되고 있다. 유흥업소 등 소매상들은 아직도 카드 사용을 기피하고 있어 도매상들이 카드 결제금액을 대신 입금해 주는 기형적인 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카드결제 단말기 공급업체가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국세청으로부터 제도 시행을 위임받은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이하 중앙회) 회장을 서울지검에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7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도매상들에 단말기를 공급해온 보나뱅크는 지난달 말 중앙회 임석준 회장을 서울지검에 형사고발하고 109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보나뱅크 김규한 부사장은 “우리 단말기는 국세청 기준에 적합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회가 도매업체들에 자사 단말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융결제원 내 카드결제망을 단절시켜 도소매상들의 카드결제 금액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그동안 주류구매 카드의 결제 은행이 조흥은행과 농협 등 일부 은행으로 제한돼 있어 도소매상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며 “이에 따라 단말기 업체를 바꿔 결제은행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무자료 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거래한 주류의 수량과 금액 등이 표시된 주류판매계산서가 출력돼야 하는데 보나뱅크 단말기는 출력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도소매상들은 기존 보나뱅크 단말기를 사용해야 할지, 중앙회가 교체한 새로운 단말기를 사용해야 할지 몰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또 외상거래도 성행하고 있어 주류구매 전용 카드제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하지만 도매상들은 “정확한 매출이 드러날 것으로 우려하는 소매상들이 아직도 카드 결제를 꺼리고 있어 도매상들이 소매상들의 카드결제 계좌에 돈을 대신 입금해 주는 방식으로 무마하고 있다”며 “소매상들이 카드결제액을 입금하는 비율은 전체 거래 금액의 절반도 채 안 된다”고 전했다.

제조업체의 한 영업담당 임원은 “최근 도매상들의 자금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어 자칫 도매상들의 부실이 제조사에까지 옮아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무기장 거래는 축소”▼

한편 주류카드제 시행 덕분에 무기장 거래 관행은 상당 부분 축소됐다. 국세청은 올 1·4분기(1∼3월) 주류거래의 92.5%가 카드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도매상과 소매상간의 주류거래 규모는 8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주류구매 전용카드제=60여만 곳의 소매상이 결제 은행에 계좌를 열고 돈을 입금한 뒤에 도매상으로부터 술을 구입토록 하는 제도. 현금으로 술을 거래하면서 거래를 숨겨 세금을 떼어먹는 관행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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