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걸레스님´ 중광

  • 입력 2002년 3월 10일 17시 59분


“나 죽거든 절대 장례식 하지 마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 해라.”

중광 스님 곁에서 18년간 시봉해온 한 보살은 10일 영결식장인 서울중앙병원에서 고인이 생전에 장례에 관해 남긴 말을 이렇게 전했다.

몇 년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려온 고인은 지난해 여름부터 건강이 악화돼 기동을 하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 가을 고인은 잠시 정신을 차리자 “바람이야, 꽃이야”라며 평소 대중에게 자주 했던 말을 했다.

고인의 삶이야말로 한줄기 광풍(狂風)이었고 세속에 핀 연꽃이었다.

‘걸레 스님 중광’의 저자 정휴 스님은 “중광 스님은 불교적 무애(無碍·거리낌없음) 정신 속에 기인(奇人)의 삶을 살다간 참 수행자이자 예술가”라고 말했다.

26세 때 양산 통도사로 출가, 득도한 고인은 조계종 종정을 지낸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과 사형사제지간이지만 잇따른 기행으로 1979년 10월 파문됐다.

고인은 파계와 기행을 거듭했지만 달마도 등 선화(禪畵)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했고 김수용 감독의 ‘허튼 소리’,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 등 영화에도 출연한 다재다능한 예인(藝人)이었다.

국내 종교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외국에서는 예술인 중광스님의 파격적인 글과 그림을 높이 평가했다. 79년 미국 버클리대 랭커스터 교수가 고인의 화문집 ‘Mad Monk’를 펴냈는가 하면 미국 CNN과 공영방송 PBS, 일본 NHK 등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98년 건강 악화로 백담사로 들어간 고인은 이곳에서 회주 오현(五鉉) 스님으로부터 ‘농암(聾庵)’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말년에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 ‘벙어리 절간’에서 수행과 작품활동을 했다.

고인은 평소 시인 구상, 작가 이외수, 영화감독 김수용씨 등과 교분을 나눠왔다. 10일 빈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 오현 정휴 정우 스님 등 불교계 인사와 삼성출판사 김종규 회장,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 김수용 감독, 탤런트 고두심, 가수 이남이, MC 원종배씨 등이 줄이어 찾았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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