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가슴을 채워 다시오겠습니다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99년 3월부터 지금까지 저는 정기적으로 이 칼럼을 썼습니다. 그 전에 ‘주간동아’ 연재 분까지 합하면 동아일보사의 매체에 벌써 2년 넘게 글을 쓴 셈입니다. 많은 독자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동아일보냐?” 또 민감한 문제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밝힌 경우 그것을 ‘동아일보의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신문사를 비난하거나 칭찬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오늘 마지막 칼럼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제가 지금껏 쓴 칼럼 가운데 ‘동아일보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칼럼의 주제와 논지는 모두 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와 관련하여 동아일보가 한 일은 명예훼손 등 불필요한 다툼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표현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해준 것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독자들께서 ‘세상읽기’에 보내주셨던 성원은 저와 제 글을 실어준 ‘동아일보’가 나눠 가져야 하겠지만, 그 시각과 논리에 대한 비판은 모두 저 혼자 지고 가야 할 몫입니다.

▼각별했던 동아일보와의 인연

하필 왜 ‘동아일보’냐는 문제는 사연이 좀 깊습니다. 제가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던 1985년 봄 재판부에 제출했던 ‘항소이유서’가 ‘지하 베스트셀러’가 된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항소이유서’를 단독보도해서 특종 비슷한 기사로 만들어 낸 신문이 바로 동아일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아일보는 ‘글쟁이 유시민’에 대해 일종의 ‘지적 소유권(?)’을 보유한 셈입니다. 98년 1월 졸지에 ‘IMF 귀국 유학생’이 되어 공부를 중단하고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말할 수 없이 곤궁한 처지에 있던 저에게 아낌없이 지면을 허락하여 준 것도 ‘주간동아’와 월간지 ‘신동아’였으며 ‘유시민의 세상읽기’ 연재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세상읽기’에서 저는 언제나 세상을 보는 ‘저 나름의 견해’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다수가, 때로는 소수만이 동의해 주었지만 개의치 않았으며 저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생각을 너무 내세우는 걸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옛 독재자들이 강요했던 ‘국론통일’이라는 구호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의사폐업 사태에서 보았듯이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돌하는 이해관계와 견해를 조정하고 절충하여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이해관계와 생각의 차이가 드러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은 채 권력과 다수파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국론통일’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회적 합의는 국민 개개인이 나름의 견해를 가지는 데 필요한 정보를 남김 없이 제공하고, 그렇게 형성된 각자의 견해를 가감 없이 표명하고 토론하는 절차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제 주장이 옳든 그르든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토론바탕 사회적 합의 이뤄야

저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칼럼 연재를 오늘로 마감합니다. 첫째는 더 들려 드릴 ‘제 나름의 시각과 논리’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년 동안 서로 다른 주제에 관해 쓴 150여개의 칼럼에서 저는 할 수 있는 말을 거의 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슴속에 가득 고여 절로 흘러 넘쳐 나오는 좋은 글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는 찰랑찰랑 바닥이 보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퍼내고 짜낸 못난 글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글 쓰기를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둘째는 글 쓰기보다 조금은 덜 소모적인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저는 당분간 칼럼 쓰기를 일절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제 칼럼이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아쉬워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로서는 큰 영광입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를 ‘외도’를 끝내고 본업인 글 쓰기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그분들께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유시민 (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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