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석현/「인사청문회」 반드시 도입돼야

  • 입력 1998년 1월 21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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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미국. 색소폰을 멋지게 연주하는 젊은 대통령 클린턴의 취임으로 미국민들이 들떠 있을 때 상원 법무위원회에서는 클린턴이 지명한 법무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후보는 수려한 용모를 갖춘 30대 후반의 여성 조이 베어드. 명문 버클리 출신으로 비록 젊지만 경력은 화려했다. 그녀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외조해줄 남편 역시 최고의 명문이자 클린턴내외의 모교인 예일 로스쿨의 헌법학 교수로 재직하는 등 어느모로 보나 나무랄데 없는 법무장관후보였다. 청문회에서 문제삼은 그녀의 흠은 단 한가지, 자녀양육을 위해 2년여 동안 불법이민자를 고용했다는 점이었다. ▼ 法어긴 사람 法수호 못해 ▼ 베어드는 일에 대한 정열과 모성애 사이에서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심적 고통을 말 대신 눈물로 표현했다. 그리고 어린 자식의 어미 노릇을 충실하게 대신해줄 수 있는 보모를 구하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실책을 범하게 되었다며 분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한 그녀에게 거부감보다는 호감을 나타내는 이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어떤 상원의원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이 미미한 법률위반을 이유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그녀가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박탈한다면 지나친 처사가 아니겠는가”라며 베어드를 적극 옹호했다. “미국인 중에서 그 정도의 법률위반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실황중계를 지켜보던 필자도 베어드가 상원의 승인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베어드여사, 그리고 여러분. 미국에는 귀하 부부 수입의 2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살아가면서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녀양육 문제를 해결하려들지 않는 맞벌이부부가 수백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델라웨어 출신 상원의원 조 바이든의 추상같은 이 발언은 아예 청문회를 더 진행할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을 증거삼아, 실제로 어떠한 경우에도 법을 어기지 않는 선량한 시민이 무수히 많음을 재확인시키고, 평범한 시민들도 어기지 않는 법을 어긴 사람이 미국의 법을 수호하는 자리에 취임할 수는 없다는 단순명료한 그의 논리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의원은 어리석은 추측과 달리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다. 물론 베어드는 스스로 사퇴했다. 1998년 1월 한국. 정국의 한 모퉁이에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아니다” 하는 소란이 일고 있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인사청문회제도는 반드시 그리고 전면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열지 않는 한, 떡값은 받았지만 뇌물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거나 그럴 소지가 보이는 자, 알게 모르게 반칙투성이의 삶을 살면서도 아름다운 원칙을 주장하는 자, 심지어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 등이 국정의 일각을 주도하는 세월이 지속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 TV통해 전 과정도 공개를 ▼ 또 청문회의 전 과정은 TV중계를 통해 공개되어야 한다. 최후의 심판자는 항상 국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괜한 트집과 호통, 마구잡이 우김질, 고함 욕설 삿대질 드잡이질 등과 같은 고약한 버릇을 가진 의원들이 저절로 몸을 사리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면 이 나라의 윗물이 될 수 없게 하는 새로운 정치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날 사람 없다”는 식의 말같지 않은 말들이 통용되던 어두운 시대를 마감하고 눈 온 뒤의 햇살처럼 밝은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김석현<전남대교수·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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