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체리향기」,마지막 5분을 위한 「지루함」

  • 입력 1998년 1월 15일 20시 08분


이 글은 ‘체리향기’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이들에 대한 반론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을 지배한 그 지루함은 얼마나 필요한 지루함이었던가. 여기 ‘바디’라는 이름의 한 사내가 있다. 그는 삶이 힘들어서 죽고 싶어한다. 그나마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군대에 있었을 때라니, 그의 괴로움이 진심임을 알겠다. ‘체리향기’는 그가 자신의 무덤에 흙을 퍼 메워줄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삶이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살 만한 것이라는 전언에 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가 그 전언에 의해 마음을 바꿔 다시 살아보기로 했는지 어쨌는지 결말을 열어둔 채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괴로운 우리네 삶도 보기에 따라서는 체리향기가 나는 살 만한 것이라는 이야기, 이것이 새로운가? 그렇지 않다. 마침내 박제사 노인이 체리향기 어쩌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어쩌고… 객설을 시작했어도 나는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 저런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특히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위대한 점은 저 진부한 진리를 영상언어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영화는 인생에서 지루한 부분만을 뺀 것이라고 한 히치콕의 말마따나 우리는 극장에 갈 때 역시 뭔가 현실과는 다른 어떤 것을 원한다. 하지만 키아로스타미는 여전히 정말 집요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그것도 현실의 호흡 그대로. 그러니 지루할 수밖에. 황량하게까지 보이는 이란의 교외, 그저 그렇게 생긴 사람들, 대화들. 우리는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영화에서 스펙터클을, 극적 대사건을, 미남 미녀를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빠른 사람은 늘 느릿느릿 걷는 법이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 제대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마지막 장면의 그 한번의 정신적 섬광을 위해 관객들을 기꺼이 지루한 현실로 초대했던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고 온 현실도피자들인 관객들에게. 드디어 마지막 장면. 감독은 현실의 손목을 살짝 비튼다. 여전히 같은 살풍경한 이란의 교외, 그 남루한 인물들이지만 모든 것이 마술처럼 변했다. 카메라는 우리의 눈이며 생은 정말 보기 나름이다. 생이 진정 살 만한 것인지는 내일이 되면 또 의심스러워지겠지만, 나는 함께 영화를 보다가 끝에 5분을 남기고 잠들어버린 친구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넌 영화의 90% 이상 보고 잠들었지만 정작 본 것은 10%도 안된다고. 이 영화는 마지막 5분을 위해 앞의 그 모든 지루함이 꼭 필요했었다고. 김연(98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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