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신질환 우범자 방치가 초래한 ‘묻지 마 살인’의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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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세 남성이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본인 집에 불을 지르고 ‘불이야’라고 외친 뒤 계단으로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죽고 13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12세 초등학교 여학생과 그의 65세 할머니를 포함해 모두 노약자였다. 2008년 30세 남성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자기 방에 불을 지른 뒤 뛰어나온 사람들을 잇달아 찔러 6명을 죽이고 7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을 방불케 한다.

범인 안모 씨는 지난해 9월 이후 8차례 난동을 부렸다. 이번에 흉기에 찔려 숨진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최모 양(19)은 눈이 나쁜 1급 시각장애인인데 안 씨로부터 위협을 받아 가족이 지난달 집 앞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정도였다. 경찰은 보름 전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도 “안 씨와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지 않냐”며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범죄 징후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대처가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안 씨는 2010년 폭력 혐의로 입건돼 조현병 판정으로 보호관찰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2011년부터 정신질환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까지 신청해 범행 당시 기초수급생활자로 아파트에 혼자 거주하고 있었다. 안 씨는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2015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치료받았으나 이후 치료를 중단했다. 안 씨의 묻지 마 범죄는 법무부, 정신병원을 관할하는 보건소, 경찰 사이에 정신질환 우범자 관리를 위한 업무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시행돼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이 크게 줄었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데도 지낼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입원을 강제하는 ‘사회적 환자’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는 환자가 본인 발로 병원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 진단과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는 대안의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신질환자들의 인권만큼이나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그들의 불가측한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의 권리도 중요하다. 안 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해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늘고 있는데도 정부는 무슨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더 방치하는 쪽으로만 가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장과 정신질환자로 인한 범죄 예방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진주 방화#묻지마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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