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고마워’ 한국어 가사에 크게 공감”…케이팝이 돌려놓은 ‘한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8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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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고마워’

‘고마워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또박또박 인쇄된 ‘한글’이었다. 6일 저녁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에서 4만 명의 관객이 일제히 방탄소년단을 향해 치켜든 응원 표어 하나하나에 쓰인 글. ‘Thank you for teaching us how to love ourselves’라는 영어 문구는 한글 밑에 보일 듯 말듯 작은 글씨로 덧붙어 있을 뿐이었다.

케이팝 열풍과 함께 전 세계에 ‘한국어가 멋지다, 세련됐다’는 인식과 ‘한국어를 배우자’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가요계에서도 한국어 제목과 가사에 대한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한때 아이돌 댄스가요를 중심으로 영어가 한국어와 혼재된 정체 불면의 ‘외계어’가 난무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상전벽해다.

●한국어 가사 실시간 번역, 호기심 껑충

6일 방탄소년단의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한국어 가사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 가사나 동영상 예능 프로그램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번역해 트위터나 유튜브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어 가사의 유통에는 트위터에서 활약 중인 수십 개의 케이팝 번역 전문 계정이 큰 몫을 한다.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같은 인기 케이팝 번역 계정은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웬만한 국내외 인기가수의 계정을 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어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 올리거나 영어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물론, ‘르몽드’에 난 방탄소년단의 기사를 영어로 옮기는 등 여러 나라 말을 다방향으로 소통하는 게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원천 콘텐츠인 한국어에 대한 위상이 올라간다. 방탄소년단의 신곡 ‘IDOL’이 나왔을 때 해외 번역 계정들이 얼쑤의 뜻과 용례 등을 실시간으로 해외 팬들에게 전달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 팬들이 ‘unnie(언니)’ ‘sunbae(선배)’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 이상의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과 사용이 늘고 있다”고 했다.

●온전한 한국어 노래, 해외 팬과도 소통 확산

한국 가요기획사들도 한국어 노래 제목과 가사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0년대 초반 걸그룹 에프엑스가 주목받으며 ‘누예삐오’ ‘Hot Summer’ 등에서 독특한 말의 조합과 외계어 가사가 신선하게 느껴졌다면 요즘에는 온전하게 이해 가능한 한국어 문장이나 구절을 선호한다. 김 평론가는 “그룹별 서사와 그들만의 이야기가 노래와 앨범에 걸쳐 어떻게 전개돼 나가느냐가 핵심 팬덤을 유지하는 데 중요해졌다”며 “뜬금없이 ‘Baby’를 연발하거나 기묘한 단어의 조합으로 단발성 자극을 주는 것보다는 온전한 한국어 가사의 가치가 올라간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어로 쭉 이야기하는 가사가 번역해 소화하는 해외 팬덤 입장에서도 잘 이해된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아마존닷컴 등 해외 서점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출간된 ‘Learn Korean with BTS(BTS와 한국어 배우기)’가 올해 2편을 찍었으며, 외국인이 저술한 한국어 교재도 다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에서 1만 권 이상 팔린 ‘케이팝 딕셔너리’를 쓴 강우성 작가는 “케이팝 팬이 많아지면서 현지인 입장에서 한국어 학습을 하며 익힌 노하우를 되새겨 직접 한국어 교육 책을 쓰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해’ 같은 한국어가 인쇄된 티셔츠도 인기다. 강 작가는 “그간 영어권에서 일본어 티셔츠가 누리던 인기를 앞지르는 모양새”라며 “한국적인 요소가 이미지로 처리된 것보다는 ‘사랑해’ ‘고마워’ 등 한국어가 인쇄된 의상이 인기가 더 많다”고 전했다.

임희윤 기자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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