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요, 인생도 몰라요’ 입담꾼 하일성, 어쩌다 자살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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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야구 해설가 하일성 씨(67)가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는 자신의 회사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하 씨는 숨지기 전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경찰은 “부인에게 보내려 했던 문자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실제로 발송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가족과 지인들을 상대로 하 씨가 숨진 경위를 조사 중이다.

하 씨는 자신 소유의 빌딩을 매각하면서 사기를 당한 뒤 빚을 갚는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왔다. 또 올해 7월에는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인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사기)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 씨는 야구인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서울 성동고에서 야구 선수로 뛰었던 그는 경희대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고된 훈련 등을 이유로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 환일고 등에서 체육 교사를 했다. 1979년 동양방송(TBC)에서 야구 해설을 시작한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창설되면서 허구연 MBC 해설위원과 함께 야구 해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다. 술자리를 즐기던 그는 2002년 심근경색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으나, 건강을 회복한 뒤 야구장으로 돌아와 명해설을 이어갔다.

그의 지인들은 “야구장에서 그가 나타나면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방송에서는 채 하지 못할 걸쭉한 농담을 특유의 입담에 담아내면 감독과, 코치, 선수, 기자들은 자지러지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야구팬들은 30년 넘게 그의 해설을 들으며 야구의 재미를 느꼈다. 해설을 하다가 예측이 들어맞을 때면 그는 “거봐요, 제가 그랬죠”라며 흥을 돋웠다. 예상과 반대 움직임이 나올 때면 “아, 역으로 가나요?”라고 슬쩍 넘어가기도 했다. 하다하다 결국 말문이 막힐 때면 전매특허인 이 말이 빠지질 않았다. “야구 몰라요~.” 이 말은 한 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야구 사랑은 해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06년 5월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11대 사무총장에 오르며 행정가로 변신했다. 당시 프로야구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현대 사태로 8개 구단 체제가 흔들렸지만 그의 부임 후 히어로즈의 창단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의 사무총장 재임 시절 한국 야구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우승,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냈다.

2009년 3월 사무총장 임기를 끝낸 그는 그 해 한국시리즈 해설을 맡으면서 본업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야구계에는 이미 선수 출신 해설가들이 각광을 받고 있었다. 그는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방송에서 야구 해설을 하지 않았다.

KBO는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날 5개 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전광판에 추모 글을 띄우고 묵념 시간을 가졌다. 빈소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5호실(02-2225-1444).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장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이다. 고인은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이헌재 기자uni@donga.com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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