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선출직과 임명직의 너무 다른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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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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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 흥미로운 말을 했다. “후보자는 선출된 공직자가 아니에요.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거예요.” 부연 설명하자면 임명직 공직자는 선출직 공직자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하고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 기준은 누가 만들었나.

선출직의 삐뚤어진 選民의식

국회의원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비단 최 의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선출직은 혹독한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것이니 벼락출세를 하는 임명직과는 공직 획득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선출직은 설사 도덕적 흠결이 있더라도 유권자가 그것까지 감안해 뽑아줬으니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셈이라는 자기 합리화도 내포돼 있을 것이다. 일종의 선민(選民)의식이다.

그러나 선거를 거쳤다고 우월의식에 젖는 것은 오만이다. 임명직이 지금의 그 자리에 올 때까지는 십수 년 또는 수십 년 전문성을 쌓아야 하고 산 넘고 물 건너는 관문도 여럿 통과해야 한다. 어떤 조직에서 무능한 ‘꼴찌’를 헤매다가 퇴출당하다시피 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의원 배지를 다는 식의 벼락출세는 임명직보다 선출직에 더 많을지 모른다.

선거로 도덕적 흠결에 면죄부를 받았다는 생각도 자기최면일 뿐이다. 사실 유권자들은 선출직 후보들의 도덕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국회의원 후보의 신고사항은 학력, 경력, 재산, 병역, 납세실적, 전과기록이 전부다.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논란이 되는 위장전입이나 탈세,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 작성, 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관용차의 사적(私的) 사용, 부동산 투기 여부 등은 알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유권자의 선택도 후보의 도덕성보다는 다른 요소들에 의해 더 좌우되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것저것 볼 것 없이 공천이 곧 당선인 곳도 수두룩하다. 선거에서 도덕성 검증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만약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인사청문회장에 선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대선 때 그에게 제기된 도덕성 논란과 의혹은 수도 없이 많았다. 서울 사당동 재개발아파트 ‘딱지’ 구입, 다운계약서 작성, KAIST 석좌교수 시절 학교에서 제공하는 사택을 마다하고 1억 원을 지원받아 별도로 전세를 산 것, 유학을 가면서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아 이사회 참석을 위해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을 제공받아 10여 차례 드나든 것, 말과 행동이 다른 언행불일치 등등…. 인사청문회라면 하나하나가 ‘적격’ 판정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같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율도 계속 고공행진이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임명직 공직자보다 덜 도덕적이어도 괜찮은가.

선출직이 더 도덕적이어야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공직의 악용 소지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또한 국민에게 미치는 ‘학습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헌법재판소장이나 다 같은 공직이다. 공직의 무게로 본다면 오히려 국회의원 쪽이 더 무거울 수 있다. 국민의 대표인 데다 법을 만들고, 다른 공직자의 도덕성을 심사하는 심판관 노릇까지 한다. 면책특권, 불체포특권, 9명의 보좌진, 후원금 모집 같은 유별난 특권도 누린다. 어지간해서는 자리에서 쫓겨날 위험도 없다. 이제 그런 특권은 내려놓아야겠지만, 지금껏 용인된 것도 자리가 갖는 무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다른 어떤 공직자보다도 더 도덕적이어야 마땅하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벌써 13년이 됐다. 국회의원들이 남의 도덕성만 따질 게 아니라 이제 그 거울에 자신의 모습도 비춰 봐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국회의원도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이동흡#국회의원#선출직#임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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