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1>생명을 얻은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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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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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갑니다. 곱던 단풍도 비바람에 떨어져 사방 산이 휑합니다. 단풍잎은 이제 생명을 다하였나 봅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학자 권근(權近)의 아우인 권우(權遇·1363∼1419)는 떨어진 나뭇잎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을 맑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스산한 가을을 맑게 하는 것은 푸른 대나무와 노란 국화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도 대나무는 그 푸른빛을 잃지 않아 파란 기운이 서재 안으로 스미게 합니다. 이에 질세라 국화도 맑은 향기를 보냅니다. 모든 꽃이 다 피었다 지기를 기다려 서리가 내린 후 피기에 국화는 고고하면서도 동시에 사양할 줄 아는 꽃입니다. 그러한 뜻에서 선비의 꽃이라 불리는 국화 곁을 거니노라면 절로 맑은 향기가 옷깃에 가득합니다. 맑고 시원합니다. 그러자 떨어진 나뭇잎도 힘을 냅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죽은 줄 알았던 낙엽도 생명을 얻어 날아다닙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낙엽이 이렇게 맑은 소리를 냅니다.

가을날 낙엽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는 비바람 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정철(鄭澈) 역시 ‘산사에서 밤에 읊조리다(山寺夜吟)’라는 시에서 “우수수 잎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 성긴 비 내리는 줄 잘못 알았네. 중을 불러 문 밖에 나가보라니, ‘시내 앞 숲에 달이 걸렸습디다’(蕭蕭落木聲, 錯認爲疏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라 하였고, 당나라 때 무가상인(無可上人)이라는 승려는 “빗소리 들으며 찬 밤 다 새우고 나서, 문을 열고 밖을 보니 낙엽이 수북하네(聽雨寒更盡, 開門落葉深)”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낙엽 구르는 소리가 정말 빗소리처럼 들리기에 이른 말입니다. 깊어가는 가을밤 비바람 치는 소리인지 낙엽 구르는 소리인지, 창문을 열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가을#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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