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련(柱聯)은 그 절의 좌우명… 깨달음에도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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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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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기둥이나 벽에 쓴 글귀
‘주련’ 관련 사연 책으로 낸 조계종 원로 월서 스님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깨달음이 있는 곳은 그 어디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이 자리이다).’해인사 법보전의 주련(柱聯)이다.주련이란 사찰 기둥이나 벽 따위에 쓰여 있는 글귀를 가리킨다. 그런데 대부분 한자로 쓰인 데다 흘려 쓴 경우가 많아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다.조계종 중앙 종회의장과 호계원장을 지낸 원로 월서 스님(75)이 최근 전국 사찰의 주련과 불가에 얽힌 사연을 담은 책 ‘깨달음이 있는 산사’(아침단청)를 출간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님은 대뜸 “깨달음은 피안(彼岸), 저쪽이 아닌 바로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인데, 짧지만 얼마나 놀라운 말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사찰의 기둥에 붙어 있는 글귀인 주련을 보면 그 절의 근본정신을 알 수 있다. 해인사 법보전 주련(왼쪽)은 깨달음의 이치를 전하고 있고, 경기 안성시 석남사 주련은 효심 천심 불심 등의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주련은 수행자나 방문객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선문(禪文)이기도 한다. 아침단청 제공
사찰의 기둥에 붙어 있는 글귀인 주련을 보면 그 절의 근본정신을 알 수 있다. 해인사 법보전 주련(왼쪽)은 깨달음의 이치를 전하고 있고, 경기 안성시 석남사 주련은 효심 천심 불심 등의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주련은 수행자나 방문객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선문(禪文)이기도 한다. 아침단청 제공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계율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대뜸 따귀를 올려붙이던 ‘호랑이 은사’ 금오 스님 생각이 더 절실하다는 월서 스님.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계율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대뜸 따귀를 올려붙이던 ‘호랑이 은사’ 금오 스님 생각이 더 절실하다는 월서 스님.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젊은 시절 참선 공부한다며 해인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는데 주련에는 신경도 안 썼어. 눈 뜬 장님이 따로 없었지. 출가한 지 50년쯤 되니 눈에 불이 나듯 그 글씨들이 들어와. 허허”

책에는 팔공산 동화사, 태화산 마곡사, 영축산 통도사, 백암산 백양사, 희양산 봉암사 등 전국 30개 사찰의 주련과 이에 얽힌 선가 이야기, 역사 등을 담았다.

주련의 내용은 참선과 관음기도, 비구니 도량 등 사찰의 살림살이에 따라, 또 어떤 부처가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일주문의 주련은 의미심장하다. ‘이심전심시하법(以心傳心是何法·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이 법 무엇인가?) 불불조조유차전(佛佛祖祖唯此傳·부처님과 조사께서 오직 이 법 전했다네)….’ 간화선을 근본 수행법으로 여기는 조계종의 정신을 담고 있다.

주로 불경의 내용이 주련에 사용되지만 큰 스님들의 자취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은 대표적인 선승 동산 스님(1890∼1966)이 써서 걸었다.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徽猷·신기로운 광명 끊이지 않아 오랜 세월 아름답네)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이 문을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마라).’ 세상의 모든 망상을 놓으라는 스님의 경구다. 능가산 내소사 대웅전 주련은 특이하게 이곳에서 출가해 입적한 해안 스님(1901∼1974)의 오도송(悟道頌)을 서예가 김충현이 써서 옮긴 것이다.

‘…약인문아희소식(若人問我喜消息·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기쁜 소식을 묻는다면) 회승당리만발공(會僧堂裏滿鉢供·회승당 안에서 만발공양이라 하리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고 잠자고 밥 먹는 일에 있다 했으니 기막히지 않나.”(월서 스님)

최근에는 한글 주련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 안성시 석남사 주련은 ‘효심천심불심 언제나 이 마음, 수행도 봉사도 나날이 즐거워’라고 돼 있다.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동 봉국사 주지를 맡고 있는 스님은 은사 금오 스님(1896∼1968)에 대한 재조명과 다문화가정 부부를 돕는 일에 힘쓰고 있다.

스님은 “배움과 수행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며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종회 의장 임기를 마친 스님은 1990년 ‘시심마(是甚摩·이 뭐꼬)’ 화두를 풀기 위해 당시 종정으로 안면이 있던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노장은 적지 않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없다. 당장 나가라”고 했다. 가르침을 구하려면 관례대로 3000배를 먼저 올리라는 것.

“그때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는데 3000배 하느라 초여름 날씨에 가사가 물 먹은 듯 땀에 젖었어. 그런 뒤 종이 한 장만 달랑 주시더군. 하하. 지나고 보니 나이나 감투에 관계없는 3000배 자체가 마음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어.”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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