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길수]중국의 문화제국주의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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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는 중국사의 한 부분이다’ ‘한강 이북의 땅도 중국 영토였다’는 중국의 역사왜곡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나라 안이 다시 시끄럽다. 중국이 내년 1월 열리는 동계 아시아경기 성화를 6일 백두산에서 채화한 사진이 공개되자 백두산을 중국의 산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을 왜곡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곡이란 ‘일본이 군위안부를 군대로 끌고 가지 않았고 조선 부녀자들이 돈 벌기 위해 스스로 일본 군대에 갔다’는 주장처럼 거짓말을 말한다. 수천 년 이어 온 우리 역사를 갑자기 중국사라고 하는 주장은 왜곡이 아니라 ‘침탈’이다.

중국이 한국 역사를 침탈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영토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목적은 “동북 변경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고, “국제적 도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쟁취하는 데” 있다. 순수한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변경 지역의 안정을 위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목적이 압록강 북녘의 영토와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은 왜 동북지역에 일어날 국제적 도발을 두려워하고, 동북지역의 안정을 위해 천문학적 연구비를 들여 한국 역사를 침탈하려 하는가? 중국이 현재 압록강 북녘 옛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역사적 정통성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옛 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는 물론 그 뒤 이어지는 요, 금, 원, 청 같은 모든 나라의 주체가 한(漢)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었다. 한때 명나라가 요동반도 일부를 차지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한번도 완전한 한족정권을 세우지 못했다. 긴 역사적 정통성을 정당화하지 못하면 앞으로 동북지방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서 시작된 작업이 동북공정이다.

이처럼 희박한 정통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스러운 학술토론 없이 급조된 중국의 주장과 논리는 아주 자의적이고 획일적이고 위험한 논리와 기준으로 이뤄져 있다. 그 잣대를 가지고 잰다면 중국 동북지역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주변의 모든 국가를 중국의 역사나 중국의 영토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은 나라는 국가가 아니고 중국의 지방정권이 된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왜, 베트남, 중앙아시아, 몽골…. 어떤 나라도 국가가 될 수 없고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6월부터 중국 선양(瀋陽) 랴오닝(遼寧) 성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하 문명전’ 첫머리에 이렇게 되어 있다. ‘3황5제 시대 중국·중화민족은 다민족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바탕을 이루었다. 중원의 신농씨 화(華)족 집단, 동남 연해의 샤(夏)족 집단, 동북 옌산(燕山) 남북의 황제 집단, 3개 집단이 중화민족의 바탕을 이루었다.’ 요하문명은 황제 집단에 들어가고, 고구려와 부여 유물은 모두 요하문명의 한 부분으로 전시되어 있어 누가 보아도 고구려와 부여는 중국 황제의 후손으로 알게 되어 있다.

이런 팽창주의적 역사제국주의 아래서 아시아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아시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평화도 없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14개국 대부분과 역사 및 국경 분쟁을 치르는 중국이 평화공존을 위한 새로운 역사관을 세우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자국을 위해서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이 하, 은, 주 이후 단 한 나라도 300년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는 역사를 뒤돌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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