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깊은 곳엔 ‘이아고’가 없을까…‘이아고와 오셀로’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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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원작에서는 ‘조연’일 뿐인 이아고를 중심인물로 재해석한 한태숙의 ‘이아고와 오셀로’. 이아고(박지일) 뒤에는 이아고의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검정 개’(이기돈)가 엎드려 있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셰익스피어 원작에서는 ‘조연’일 뿐인 이아고를 중심인물로 재해석한 한태숙의 ‘이아고와 오셀로’. 이아고(박지일) 뒤에는 이아고의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검정 개’(이기돈)가 엎드려 있다. 사진제공 LG아트센터
데스데모나(김소희·왼쪽)와 오셀로(장우진).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데스데모나(김소희·왼쪽)와 오셀로(장우진).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이아고와 오셀로.’ 올가을, 연극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한태숙 연출의 신작이다. 가벼운 소극장 연극과 재공연이 더 많은 요즘, 모처럼 묵직한 주제의 대극장용 연극이 무대에 선보이는 것. 14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연습실을 찾았다.》

오셀로 “내 아내만큼 사랑스러운 여자가 또 있을까! 제왕 옆에 누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여자인데.”

이아고 “네. 어제까지는 그리하셨죠.”

오셀로 “재치 있고 귀여운 데다 그 목소리! 그녀가 노래 부르면 사자도 온순해질 거야”

이아고 “그러니 더 나쁘죠.”

오셀로 “그래. 하지만 마음은 또 얼마나 따뜻한데.

이아고 “어느 남자한테나 따뜻하죠.”

오셀로 “그래그래. 더 사무치게 억울하고 분하다, 이 배신감….”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도록 오셀로를 이아고가 부추기는 대목이다. 음산한 말투로 얄밉게 맞장구를 치며 데스데모나를 부정한 여자로 몰아가는 배우 박지일의 모습은 딱 간사한 ‘이아고’ 그 자체였다. 오셀로 역의 장우진은 가무잡잡한 외모부터 ‘검은 무어인’ 오셀로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는 “피부가 흰 편이어서 오셀로 역을 위해 일부러 2번 기계 태닝을 받았다”고 했다.

보통 ‘런 스루’(연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연극처럼 그대로 하는 것)는 공연 2주 전쯤 시작하지만 꼼꼼하기로 소문난 한태숙 연출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이미 ‘런 스루’를 시작했을 만큼 배우들은 ‘강훈련’ 중이었다.

박지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연출가”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하지만 ‘최초의 관객’인 연출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관객을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재해석한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연출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오셀로’도, ‘오셀로와 이아고’도 아닌 ‘이아고와 오셀로’. 이 작품의 무게중심은 ‘이아고’에 놓여 있다.

원작에서는 조연일 뿐인 이아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뭘까?

“솔직히 그냥 원작 그대로의 ‘오셀로’였다면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아고’는 요즘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현대적인 캐릭터예요. 부관에서 밀려난 이아고의 심리는 승진에서 누락한 직장인의 심리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고요. 이아고의 악한 심리를 해부해 보고 싶었어요. 사이프러스 섬에서 나흘 동안 발생한 한 편의 ‘범죄추리극’처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한태숙)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이아고의 내면을 대변하는 초현실적 캐릭터인 ‘검정개’의 등장. 대사 없이 무대를 어슬렁거리는 ‘검정개’역은 이기돈이 맡았다.

한태숙 연출가는 그동안 셰익스피어를 전복(‘레이디 맥베스’)시키거나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뤄(‘꼽추, 리차드 3세’)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이아고와 오셀로’ 준비하면서 제 방에 천으로 된 커다란 셰익스피어 초상화를 하나 걸어 놨어요. 그리고 매일 말을 걸죠. ‘이번에 영감님 작품 제대로 만들어볼 테니 도와주세요’라고.”

9월 12∼17일. 화∼금 8시, 토 일 3시 7시. LG아트센터. 2만∼4만 원.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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