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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가족 분명한데… ‘동서지간’ 남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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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가족 분명한데… ‘동서지간’ 남 같기도 하고…

입력 2005-09-05 03:02수정 2009-10-01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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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로 몰려다닌다. 문신을 한다. ‘형님’이라고 부른다. 시중에 떠도는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이라는 우스갯소리다. 여성이 결혼하면 익혀야 하는 낯선 호칭 가운데 손위 동서를 부를 때 써야 하는 ‘형님’만큼 어색한 게 없다.

이렇게 어색하게 시작하는 동서관계, 남은 아니지만 끈끈한 정은 없고 때로는 견원지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친하지도 않은 동서 얼굴을 피치 못하게 봐야 하는 명절은 그러잖아도 명절이 괴로운 주부들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동서 사이가 틀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동서끼리 비교되거나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나쁜 감정이 생기는 것.

경기 양평군의 땅부잣집 맏며느리인 방정선(가명·45) 씨는 스스로 ‘곰’ 며느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붙임성이 없는데 ‘여우’ 며느리 손아래 동서만 생각하면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다.

서울에 사는 방 씨와는 달리 손아래 동서네는 시댁 인근에 살면서 시부모로부터 주유소를 물려받는 등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 방 씨는 아이들 사교육비를 약간 지원받을 뿐 맏이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맞벌이냐 전업주부냐도 동서 사이에 상당한 갈등 요인이다.

전업주부인 강지선(가명·41) 씨는 “직장 다니는 동서들은 명절날 늦게 와도 ‘돈 버느라 고생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명절 준비를 도맡는 나는 수고한다는 얘기 한번 못 듣는다”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너는 할인마트에라도 안 나가느냐’고 물을 땐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동서 간 ‘서열 갈등’도 한몫한다.

맏동서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동서 시집살이가 더 매섭다’는 말은 이제 옛말. 맏이 권위는 땅에 떨어졌는데도 의무는 여전하고, 때로는 서열을 무시하려는 신세대 손아래 동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전업주부 서모(35·서울 강남구 삼성동) 씨는 얼마 전 27세의 손아래 동서를 봤다. 붙임성 좋고 ‘쿨’한 맞벌이 손아래 동서에게 딱 한 가지만 충고했다.

“명절날 늦게 와도 좋고 못 와도 좋아. 그런데 그걸 시어머니께만 말씀드리고 나한테 아무 말 안하는 것은 안 돼. 날 건너뛰지 마.”

손아래 동서는 손아래 동서대로, 맏동서 운운하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싶다.

여자가 연상인 커플이 늘다 보니 ‘형님’보다 손아래 동서가 ‘언니’인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이도 어린 ‘형님’이 반말하는데 나이 많은 손아래 동서가 고분고분 ‘형님’이라고 불러 주는 것은 어지간히 도를 닦지 않고선 어려운 일.

외국에 나가 사는 동서는 부러움 반 미움 반이다.

손아래 동서네가 중국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주부 박소정(가명·42) 씨는 “다른 일로는 가끔 국내에 들어오는 동서가 명절이면 비행기 예약이 안 돼 못 온다고 전화할 때 정말 얄밉다”며 “나도 명절이면 잠시라도 외국에 나가 며느리라는 짐을 벗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굳이 나쁜 사이까지는 아니어도 명절이나 시댁경조사가 아니면 따로 얼굴 볼 일도 없고 평소 전화도 안 하는 동서 사이가 흔한 게 요즘 세태.

맞벌이 주부인 이영희(가명·37) 씨는 처음 결혼했을 때만 해도 큰동서에게 명절 전에 어떻게 하는지 묻는 전화를 했지만 “그냥 하던 대로 하자”며 반기지 않는 큰동서의 태도에 몇 년째 전화 없이 명절날 얼굴만 보고 지낸다.

이 씨는 “우리 언니도 큰동서랑 명절날 만나면 화기애애하지만 명절이 아닌 날에는 따로 만나는 일이 없다”며 “작은어머니와 친자매처럼 지내시는 친정어머니를 보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가족보건복지연구부 김영란 전문연구원은 “가족애가 남다르거나 여자 형제가 있어 응집력을 발휘하는 가정은 자녀 결혼 후 서로 친밀하게 지내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경조사나 명절만 챙기는 의례적 관계로 흘러 동서관계도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경아 사외기자

▼드라마 속 동서지간은▼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서지간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서도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끝난 KBS 2TV의 ‘부모님전상서’에서는 애교로 시어머니와 거의 ‘친구 먹는’ 여우형 큰동서와 속이 너무 깊어 가족들로부터 오해를 사는 곰 스타일의 손아래 동서 간 갈등이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었다. 요즘 방영되는 MBC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학벌도 변변찮은 수습 미용사 금순이의 큰동서는 유능하고 콧대 높은 전문직 여성이다. 큰동서에게 부러움과 위압감마저 느끼던 금순이지만 결국 큰동서나 자신 모두 아이를 데리고 재혼이란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결국 같은 여자이고, 같은 시댁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서지간은 뭔가 통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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